개인평 요약 : 5.5/10, 추천
수학에 매몰된 삶을 살던, 천재적인 박사과정생 마거리트가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주해, 인생의 전부였던 수학을 포기하겠노라 선언하고 학교에서 탈출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충동적인 생활을 하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하고, 또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을 찾게 되는 여정을 그린 작품. 관찰자의 입장에서 마거리트를 보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고, 수학이라는 소재를 떠나서도 주인공에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지 않아 아쉬워요.
최정상급 수학 천재의 일탈 판타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마거리트'는 수학 신동입니다. 수학 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어릴 적부터 수학의 세계에 이끌려, 수학 말고 다른 것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살아온 범생이 그 자체죠. 그녀의 캐릭터는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 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수학으로 가득 차 있고, 사회성은 결여되어 있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들에게는 밝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조금만 해가 되는 제스처가 보이면 그 누구든 참지 못하고 쳐내 버리죠. 지도 교수(였던) '웨르너'(Werner, 베르너)는 물론이고, 그가 옥스포드에서 스카우트해 온 같은 박사생 '루카스'나, 심지어 극 중 유일한 혈육이자 든든한 부모인 어머니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마거리트는 웨르너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수학적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에 대한 정리를 박사 논문 주제로 하지만, 정리 내용을 학내 피어 리뷰 하던 도중 정면으로 반박 당하면서 패닉에 빠지고 그대로 도망칩니다. 설상가상으로 옥스포드에서 루카스를 데려오며, 자신에겐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것만 같다고 마거리트 스스로가 생각하는) 웨르너가, 자신의 대응을 보고 미성숙하다며 비판하고, 지도 교수를 바꾸자고 제의하자 그녀는 배신 당한 것으로 여기고 학업포기서를 제출한 뒤 학교를 떠납니다.
수학과는 이제 작별하겠노라는, 말 그대로 "사춘기가 좀 늦게 온 모양"으로 보이는 마거리트는, 설문 조사원 교육장에서 처음 만나 함께 퇴장당한, 마음 가는대로 사는 노아의 빈 방에 충동적으로 룸메이트로 들어가 살게 되고, 스포츠웨어 매장에서 최저 시급을 받는 일을 시작하죠. 자신과 같은 인재가 수학을 포기하는 게 너무 아깝지 않냐는 둥, 지금까지의 전액 장학금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는 둥 당근과 채찍으로 회유하는 웨르너 교수나 여러 인물들에게 말 그대로 철벽을 치고 무대응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저버리기엔 그녀의 수학에 대한 애정은 너무 컸는데요. 월세 아파트 1층에서 처음 보고 매력을 느껴, 휴대폰으로 즐겨 오다가 종국엔 도박으로까지 손을 대게 된 마작에서 수학적 영감을 얻게 되고, 이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푹 빠져 있던 난제이자, 웨르너 교수의 평생의 숙제이기도 한 '골드바흐 추측'을 연구하게 되는 촉매이자 열쇠가 됩니다. 웨르너가 다음 학술회에서 자기의 골드바흐 추측에 대한 발표를 공개하기 전, 이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그를 이기겠노라는 불타는 야망을 가지고, 자신과 같이 유의미한 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목표 지향적인 루카스를 웨르너 몰래 꼬드겨,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함께 난제를 풀어 가기 시작하죠.
학문적 쾌감은 없었다... 수학은 거들 뿐, 인물 묘사에 집중하는 영화
마거리트의 정리는 첫인상으로만 보면 꽤 복잡한 수학적 이해도를 필요로 하는 영화일 것만 같지만, 사실 이전까지의 내용을 읽고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관람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여느 유럽, 특히 보통의 프랑스 영화가 그렇듯 한 인간의 삶의 궤적, 그리고 그 내면을 그려내는 데에 극도로 몰두하고 있는 작품이고, 대학원 레벨의 수학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를 위한 세팅이자 수단에 불과해요. 리만 가설이든 골드바흐 추측이든 아직까지 증명되고 정리된 바 없고,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도 않고, 수학적 난제에 대한 실질적인 돌파구를 찾는 데서 오는 감동도 찾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관객들과의 공통적인 공감대를 찾기는 어려워 보이고, 사실상 가상의 영역, 그러니까 '범생이의 수학 판타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대충 글로만 읽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마거리트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은 인물이 아닙니다. 여느 천재 서사의 주인공들처럼 괴짜에, 목표 지향적이지만 소시오패스급으로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고, 남들과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죠. 보통 이런 영화들에서 제공하는 감동 포인트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선 누군가의 도움을 받든, 아니면 어떤 계기로 본인 스스로가 번뜩이는 영감을 얻든 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무언가를 이룩해 내고 쟁취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있을 거고요. 이 외에는 주인공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이들과 사랑, 우정을 함께 하며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데서 오는 감동 따위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마거리트의 정리가 아쉬운 것은, 이런 전형적인 괴짜 천재 서사에서 벗어나 있지도 못하면서, 동시에 이 두 가지가 전부 애매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마거리트가 루카스의 도움을 받고, 끝내 학회장에 난입해 웨르너보다 먼저 스스로 증명한 골드바흐의 추측에 대한 증명을 완성하는 것은 분명 어느 정도는 카타르시스적인 환희를 선사합니다. 인간적인 레벨에서는 마거리트가 루카스라는 진실한 사랑을 찾는 것에도 약간의 감동은 있고요. 너디(nerdy)하고 기키(geeky)한 캐릭터를 토대로, 어렵게 어렵게 영화에서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긴장감을 빌드업 했다가, 결국 댐 자체를 통채로 날리면서 물을 방류하듯이 터트리는 시나리오 구성이지만, 종국엔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많아 아쉽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현실 수학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학문적 근거는 없기에,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에게로 시선이 이동하고, 특히 95% 정도는 주인공 마거리트에게 집중하는 구도로 그려지지만, 수학이라는 소재는 둘째 치더라도 플롯 상의 인물적인 배경이나, 기타 마거리트에 공감할 수 있는 그 어떤 요소도 제대로 제시하고 있지 못하기에 몰입의 상한선이 너무나 명확히 그어지고 있고요. 학문적 성취를 제외하면 완전히 미성숙한 인간인 마거리트가 성장하는 것은, 분명 개인의 관점에서는 장족의 발전이겠지만, 역시 보통의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동을 주기에는 어딘가 미묘하고 또 부족합니다. 관객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아직 변화하기 전, 극도로 닫혀 있고 이기적인 상태의 마거리트를 관찰하면서 오는 짜증을, 이후 인격적으로 성장해 스스로를 옭아 매던 집착들과 편집증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마거리트를 보게 되면서 느끼는 편안함, 안도감, 감동 따위가 상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와중에 진실한 사랑을 찾는다는 서사까지 곁들였으니... 전반적으로 집중하기도, 또 공감하기도 어려운 작품이었다는 감상이었네요. 소재는 신선했지만 전달이 아쉬운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