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5.5/10, 추천
베트남 중부의 산골 맨션에 자리 잡은, 경매 부호 리(Lý)씨 일가 자매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저택 정원에서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야만 가문의 여자들은 결혼할 수 있다"는 허망한 저주를 가진 집안의 비밀들이, 20년 넘게 집안의 권세를 책임져 왔던 가보인 봉황 예복이 사라지면서 시작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하나하나씩 밝혀지고, 결말로 치달을수록 고조되는 긴장, 각 인물의 심경 변화와 상호 간 쏟아내는 감정의 폭포로 만들어 내는 드라마가 특징.
동백꽃 저택 리씨 가족의 비밀
한국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정말 얼마 안 되는 베트남 영화 중 하나인 '동백꽃 자매들', 처음엔 붉은 톤의 포스터를 보고서 한 15년 ~ 20년은 된 작품인가? 했는데, 이거 알고 보니 21년 초에 개봉한(...) 비교적 따끈한 영화였습니다. 배급으로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떡하니 참여한 작품이라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건가 싶네요.
어쨌거나 동백꽃 자매들은, 사실 베트남에서는 여러 편째 이어져 오고 있는 영화 프랜차이즈('Gái già Lắm Chiêu')의 네 번째 작품인데요. (근데 왜 Gái già Lắm Chiêu "5"냐고...) 저도 그쪽 영화사를 잘 아는 게 아니다 보니 자세히는 모르지만, 줄거리는 이어지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콘셉트만 계속 끌고 가는 (그리고 아마 제작진도 비슷할 듯?) 이런 TV 주말 극장 같은 영화가 베트남에서는 꽤 있는 편이에요. 이보다 더 인기 있는 상업 영화 프랜차이즈로, 현재 7까지 제작된 베트남 "페이스 오프"('Lật mặt') 시리즈도 있고 하니, 아마 현지에서는 익숙한 일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동백꽃 자매들을 포함한 해당 시리즈는 매 편 여성 캐스트들이 중심이 되는 서사의 드라마라는 기초적인 구성을 하고 있어요.
영화 줄거리는 다 보고 난 감상으로는 크게 특별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족과 치정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은폐되어 있는 주요 정보가 중반, 후반부 갈수록 미스터리 장르처럼 서서히 밝혀지는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고 보기 시작해서 딱 한 번 관람하면 충분히 재미있는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데요. 어릴 적부터 봉황처럼 큰 사람이 되길 원했던 주인공 '린'(Lý Linh)은, 자신들 리씨 일가에 부와 명망을 불러온 가보인 봉황 예복을 거대 다국적 기업 총수인 약혼자 아버지에게 몰래 가져다 바치고, 그 대가로 부회장 자리를 차지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고향의 언니들이 있는 동백꽃 저택으로 돌아옵니다. 집안 대표 경매 호스트로서, 지금껏 가문을 책임져 온 눈치 백 단 맏언니 '하'(Lý Lệ Hà)는, 불러도 잘 오지 않던 린이 불현듯 자발적으로 돌아와 경매 바람잡이를 하겠다고 하자 그녀의 모티브를 의심하죠. 마찬가지로 약간 맛이 간 것 같이 연기하며 살고 있는 둘째 언니 '홈'(Lý Lệ Hồng) 역시 린을 의심스러워하고, 특히 사실혼 관계로 귀머거리 행세를 하는 집사 '칸'이 린의 전화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되면서 그녀의 꿍꿍이를 알게 되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 줄거리 내내 예복을 뺏으려는 창과, 반대로 가문에 지키려는 방패의 주도권 싸움이 될 것 같지만, 의외로 봉황 예복은 초반부에 갑자기 돌연 사라지게 되고요. 마음이 다급해진 린이 예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는 과정 속에서 두 언니와의 관계, 그리고 하와 불륜 관계인 '빈 응이'(Vĩnh Nghị)와 그의 아내, 그리고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행적을 뒤쫓아 온 아들 '조나단'과 얽히는 과정 속에서 집안을 둘러싼 굉장히 큰 스케일의 거짓과 비밀들이 차츰 드러나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주는 놀라움, 그리고 린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들이 고뇌하고, 서로 갈등·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격한 드라마가 영화의 주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하네요. 전반적인 플롯은 '말이 안 된다' 수준은 아니지만, 반전 서사와 중심인물 간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개연성이 좀 부족한 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는 챙기지 못한 채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한 점은 (드라마 장르 특성이기는 합니다만)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이런 점들은 아마 취향에 따라 적당히 무시하고서 저보다 더 즐겁게 보실 수도 있겠다 싶긴 합니다.
줄거리 외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울창한 숲/밀림과 마지막 왕조의 유적지가 남아 있어 고유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후에(Huế)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독특한 로케이션을 가지고 있어 공간 특유의 심미성이 살아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같은 베트남 내에서도 북부나 남부와 분위기가 꽤 달라요.) 실제로 영화 속 주요 촬영지들은 베트남 중부의 다양한 문화유산·유적지이고, 솔직히 말해 막 취향에 들어 맞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만, 매 화면의 배경이 너무나도 이국적이고 아름다워서 생각보다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내용은 둘째 치고, 카메라로 담아 낸 공간미 때문에 다시 베트남 여행 가고 싶게 만드는 작품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