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6.5/10, 추천
시저가 사라지고 300년이 지나, 과거가 인간과 유인원 모두에게 잊힌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고대 인간 문헌의 로마 제국 역사에 심취한 왕 '프록시무스'의 땅으로 끌려간 독수리 부족원들을 구하기 위해 복수의 여정에 나선 침팬지 '노아'와, 여정 중 만난 마지막 "시저의 장로"인 '라카', 그리고 지능을 잃지 않은 인간 '메이' 세 인물의 모험을 그려낸 작품.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유인원과 인간, 같은 유인원 간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결말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기에 3부작에 이어 계속해서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쉬움.
시저 3부작을 잇는 '혹성탈출'의 새로운 서사
'혹성탈출: 종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너무나 강렬했던 시저의 일대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번에 개봉한 '새로운 시대'는, 말 그대로 시저 사후 많은 세대를 거치며, 그의 위업이 대부분 잊히고 만 미래 세대 유인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회를 토대로 하는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배경부터 리부트 전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모습이 생각나는 영화였는데요. 한국어 부제로는 "새로운 시대"라고 번역되었지만, 사실 영어 타이틀은 "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입니다. 말 그대로 초기형 유인원 왕국이 형성될 정도로까지 성장한 유인원 문명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그래서 배경이 배경인지라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도 영 과도기스러운(?) 느낌이 많이 납니다.
주인공 '노아'는 이제 막 부족의 성년식을 치르게 된 앳된 청년 침팬지입니다. 같은 처지인 '수나'와 '안나야'와 함께 의식에 치를 독수리 알을 강제로 입양(?) 해 오는 것이 영화의 도입부에 해당하는데요. 이들 독수리 부족은 숲 속에서 수렵 위주로 생활하는 침팬지 단일종의 닫힌 사회로, 노아의 아버지이자 "모든 새들의 주인"인 클랜 리더 '코로'와 장로들의 통솔 하에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노아의 뒤를 밟는 정체불명의 인간 소녀 '메이'가 남긴 흔적들 때문에, 인간과 유인원을 사냥하는 '프록시무스'의 유인원 왕국 침략자들에 의해 모두 죽거나 끌려가게 되죠. 치열한 싸움 끝에 홀로 남아,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게 된 노아는, 아버지가 죽임 당하기 전 했던 약속처럼 이들의 뒤를 쫓아 어머니와 부족원들을 모두 해방시키겠노라 다짐하고 모험에 나섭니다. 주인공이 유인원이란 점만 제외하면 아주 친숙한 영웅 민담 내지는 설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이런 서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데요. 그래서 전작들과 달리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됩니다.
노아는 홀로 여행하던 중, 말주변이 아주 청산유수인 오랑우탄 '라카'를 만나게 됩니다. 그 중요도에 비해 퇴장이 너무 허무하고 빨랐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그의 존재는 영화 전반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데요. 마지막 남은 "시저의 장로회" 구성원을 자처하는 라카는, 노아의 영특함을 알아채고 그의 여정에 동행하면서, 노아가 잘 알지 못했던 유인원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부족 바깥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의 내적 성장을 돕습니다. 물론 그 역시 알고 있는 지식의 상당량은 진위가 꽤 불분명하고, 가지고 다니며 보존하려 힘쓰는 책들의 글조차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배우지 못했지만, 이해와 공존, 포용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원래 시저의 가르침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올곧은 생각을 가진 캐릭터이죠. 결국 그는 여행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스로를 희생하며 안타까운 최후를 맞지만, 그의 메시지는 노아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계승됩니다.
무엇보다도 라카가 중요한 이유는, 그를 미지의 인물인 인간 '메이'와 연결시켜주고 있기 때문인데요. 굶주리고 겁에 질렸으면서도 계속해서 노아를 따라다니던 그녀에게 먼저 음식을 던져 주면서 자비를 보이고, 노아 역시 (당시 시점에선 유품이 될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담요까지 건넬 수 있도록 포용의 길로 이끌면서 메이와의 정서적 교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퇴화한 인간들과 같이 말도 못 하는 것처럼 연기했던 메이가 마음의 문을 열면서, 동격의 개체로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서로 돕고 신뢰하는 관계를 구축하게 되죠. 꽤 살얼음판 같긴 하지만 이들의 유대는 대체로 영화 끝까지 이어지며, 중심 줄거리 속에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됩니다.
분명 잘 만든 영화인데... 어딘가 감출 수 없는 갑갑함
이전의 혹성탈출 리부트 3부작을 이미 보신 분들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인간인 관객의 관점에서 영화는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바이러스로 대부분 사망했고, 남은 이들은 변종 바이러스로 퇴화해 사실상 야생 동물이 되었으며, 극히 일부만이 폐쇄된 벙커 등지의 환경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고요. 반대로 바이러스 덕에 높은 지능을 얻은 유인원들은 말 그대로 지구를 차지한 지배종이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했던 실수들을 대책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표격인 인물이 (인간 '트레베이선'과의 수업 내용 중 로마 제국사를 가장 좋아하는) 보노보 프록시무스죠. 그는 스스로를 시저의 정당한 후계자인 "프록시무스 시저"라 칭하며, 마찬가지로 어려움 속 유인원들의 유대와 결속을 위해 제창됐던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는 메시지를, 자신의 입맛대로 유인원 왕국을 굴리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며 침략을 통한 확장과 포악한 내정을 이어갑니다. 결국은 노아와 독수리 부족 친구들, 그리고 메이에 의해 축출당하기는 하지만, 스크린타임 내내 이미 한 번 망한 세상이 다시 한번 비뚤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꿈도 희망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감상이 지배적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답답한 이유는 여럿 더 있습니다. 우선 앞서 영화 내용이 전형적인 영웅 설화와 같은 구조라고 말씀드렸지만, 정작 결말은 시원시원하지 않고 찝찝하기만 하다는 점이 꽤 크게 작용합니다. 보통의 영웅담은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조력자의 도움과 본인의 노력 및 능력으로 이겨내며 눈부신 개선(凱旋)을 맞는 것이 보통이죠. 해피 엔딩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바보 온달' 이야기처럼 비극일지언정 결말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선 노아와 독수리 부족으로 대표되는 유인원들은 해방되긴 했으나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크게 상처받았으며, 인류의 구원은 여전히 너무나도 요원하기만 하고, 무엇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유인원 간의 화합,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공존 가능성을 전혀 타진하고 있지 못한 줄거리 때문에 화장실에 가서 일 보다가 도중에 끊긴 채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인물 관계와 캐릭터성 역시 지나치기가 어렵습니다. 시저가 주인공인 앞선 작품들에서는 조연들의 포지션이 꽤 명확했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인간과 유인원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반대로 서로 믿을 수 없다며 폭력으로 찍어 눌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양 극단의 유인원, 인간들이 있었죠. 이런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다층적이고 심오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 시저였습니다. 수 없이 많은 갈등 속에서 그는 자신과 타인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때론 유인원의, 때론 인간의 손을 들어주며 끊임없이 고뇌하고 어려운 결정을 이어갔죠.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시저의 모습, 그리고 그가 죽을 때까지 보였던 용기와 강인함, 포용의 제스처는 유인원과 인간 사회가 서로를 조금씩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모두를 한 발짝 한 발짝씩 더 나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갔습니다.
반면 '새로운 시대'에서는 대책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이어집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며, 저마다의 목표를 의중에 품고 기만적으로 움직이죠. 관객 된 입장에서도 종족 불문 시저와 같이 처지에 몰입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 없습니다. 시저의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리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그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그의 비전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이는 악역인 왕 프록시무스는 물론이고, 이제 겨우 부족에서의 인정을 쟁취하게 된 젊은 주인공 노아 역시 마찬가지죠. 여행 속에서 유인원들과 어느 정도 친밀도를 쌓지만, 결국은 동족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그려지는 메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영화에서는 노아와 메이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며,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지만, 결국 그 어느 것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며 황급히 마무리 짓고 맙니다. 이 역시 다양한 메시지로 희망을 보여 주었던 기존 시저 3부작과 크게 대비되는데요. 단순히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목표가 있으면 서로 도울 수 있으며,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해치거나 죽이지 않는다 정도의 교감 수준은,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시저, 모리스와 노바 같은 케이스와 비교되기에 굉장히 실망스럽게 다가왔을 겁니다. 영화 말미에 대부분의 프록시무스 왕국 유인원은 죽거나 실종 상태에 놓이고, 노아는 다시 부족민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 낡은 삶의 방식을 이어가며, 메이는 인간만을 위한 본인의 미션을 달성해 복귀하는 데 그치고 말죠. 이렇다 보니 "시저의 장로회"의 유산을 충실히 넘기지 못한 채 이른 죽음을 맞이한 라카만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다음이 궁금해지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 영화는 결말까지 암울한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았으며, 모두가 상처만 받은 상태로 끝나버리고 만 셈입니다. 물론 후속 편에서 더 나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뭐랄까, 현재로선 한 편의 영화로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큰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
P.S.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는 쿠키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