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만 있었던 확률 조작,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커뮤니티에서 국내 게임들에 대해 게이머들이 하던 "체감 확률이 낮아졌다"라던가, "고지된 확률과 실제 유저들의 결과 누적치에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온라인 게임에 추가 결제로 가챠 상품이 도입된 이후 꾸준히 제기되었기에 신선한 의견은 아닌데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실제 조사를 거쳐 이런 의혹 중 일부가 실제 사실이었음을 밝히면서, 넥슨에 시정 명령과 함께 전자상거래법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금액인 116억 4,200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메이플스토리와 버블파이터에서의 확률 하향 조정 잠수함 패치와 최상급 옵션이 중복되지 않도록 설정된 것을 알리지 않은 것, 유저에게 불리한 가챠 초반부의 상급 결과물에 대한 0% 확률 설정 등에 대한 징계인데요. 일부는 이미 크게 논란이 된 상황이지만 또 나머지는 새로운 뉴스로, 화가 나다 못해 허탈해서 실소가 나오는 지경입니다. 메이저 언론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보통 게임사에 불리한 기사를 잘 내놓지 않는 게임 웹진들이 일제히 보도와 분석을 쏟아낼 정도이니, 사태의 심각성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국내 게임사 및 과금 체계에 대한 불신은 앞으로 더 커질 것 같네요.
당장 2개 게임의 특정 기간에 한정된 확률형 과금 상품에 대한 조사 결과이기에, 사태는 넥슨에서 개발·퍼블리싱하고 있는 전체 게임들 및 크고 작은 다른 국내 게임들로 들불 번지듯이 검증 러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유저들이 체감 상 지나치게 오차가 큰 가챠 상품들에 대해 불신이 큰 상황인 데다, 일부 게임들의 고래 유저들이 아예 수천~수억 대 결제를 통해 연속 구매한 결과를 공유하거나 반대로 여러 명의 구매 결과를 통계로 집계하는 동향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공정위가 칼을 빼 들었고, 그전에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도 확률 공개 정보 내용을 모니터링하겠다고 나선 상황이기에,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게이머들이 앞다투어 제보에 나선다면 앞으로 어디에서 어떤 폭로가 더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유저 마음에 더 상처 주는 발언은 관두고 시정에나 나서길...
이런 상황에 대해 넥슨은 죽은 듯이 엎드려 있기 보다는 적극적인 대응을 선택했습니다. 확률형 유료 아이템의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기 이전 시절에 있었던 내용에 대한 소급이라는 항변과 함께, 업계 최초로 투명한 확률 공개에 나서고 있음을 어필하며 과한 징계라는 판단으로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아예 일리가 없는 의견은 아닙니다만, 유저 민심은 고려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인상이 짙은 것도 사실이고요. 이전 서든어택, 카운터스트라이크온라인2의 사례에 부합하는 항변이지, 이번 건에 대한 변명이 되기엔 논리도 빈약하고 구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넥슨 측 해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맞서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도 공정위쪽 의견이 훨씬 더 일리가 있기에 더 이상 사태를 키우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 개인적으로도 기업 측 행보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역대급 과징금이긴 하나 수개월의 영업정지를 대신하는 결과이니 선방한 상황이고, 막말로 메이플스토리로 116억은 몇 개월이면 매출로 복구가 되는 금액인데, 게이머들에게 계속 상처를 주면서까지 대응을 강행해야 할 만큼 큰 액수라 그런 걸까요. 또한 이번 징계 대상이 된 버블파이터에서는 공지로 사과문을 올렸고,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디렉터급 라이브 방송으로 해명 및 사과 의견을 밝혔습니다. 전반적으로 납작 엎드리기만 하기보다는 사과할 내용은 사과하되, 소명도 적극적으로 해서 정면 돌파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넥슨을 포함한 게임 업계 종사자들 반응도 대체로 유저들과 비슷합니다. 많은 분들이 결정권자들에 대해 이렇다 할 제재가 없는 점을 성토하고, 신뢰가 무너진 국내 게임들에 대해 현재, 미래에라도 자성을 통해 믿음을 되찾자는 의견이 대부분인데요. (대부분 큰 힘이 없는 실무자들이겠지만) 내부에서 이런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고무적이지 않은가 싶지만, 아직 판단을 내리기엔 이르겠지요. 모쪼록 이번 사태가 국내 게임사들과 유저 커뮤니티 모두가 만족스럽게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