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로그라이크 CCG의 교과서가 된 '슬레이 더 스파이어'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는 2017년 11월 스팀에 얼리 액세스로 등장한 이래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유저 평가를 유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온 로그라이크형 CCG 이자 인디 개발작입니다. 플레이 경험이 '하스스톤'(개인적으론 대전보단 모험 모드와 유사하지 않나 하고), 그리고 '다키스트 던전'과 흡사하다고 하여, 한때는 일명 '다키스톤'으로 불리기도 했죠. 물론 유명세를 타고, 팬층이 두터워지면서 굳이 다른 성공작들에 빌어 소개할 필요가 없어졌고, 요즘엔 저렇게 언급되는 경우를 보기 힘들어진 듯합니다. 오히려 "슬더스"를 비슷한 다른 게임 소개할 때 언급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죠. 쟁쟁한 카드 게임들 사이에서 장르 정립적인 위치에까지 도달하게 된 것을 보면 분명 경이로운 수준의 게임인 것은 확실합니다. 참고로 올해 4월, 모 게임쇼에서 고도 엔진으로 만든 2의 모습이 처음 공개됐고 2025년에는 얼리 액세스로 출시 예정이라고 하니, 후속작이 나오기 전에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타이밍은 지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해요. 슬더스는 스팀(Steam) 등에서 구매해 PC로도 즐길 수 있지만, 닌텐도 스위치나 iOS/Android 모바일 디바이스로도 동일하게 플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플랫폼에서 할인할 때 잘 찾아서 입맛대로 사서 플레이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만만치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게임!
슬더스 자체는 난이도가 낮은 게임은 아닙니다. 아마 CCG에 익숙하지 않은 과거의 저와 같은 분이라면, 3개 캐릭터 모두의 바닐라 엔딩을 보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특히 로그라이크식 덱 빌딩과 몇 수 앞을 바라봐야 하는 카드 게임 특유의 턴 컨트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능숙하게 플레이하는 데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겁니다. 그저 플레이 타임만 늘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로그라이크임에도 플레이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좋았고, 그래서인지 엔딩을 볼 때마다 얻은 성취감은 다른 게임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가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도리어 드문드문 던지는 떡밥이 매우 매력적인 게임이 아닐까 하는데요. 단순하지만 특징을 잘 살린 2D 아트도 게임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습니다. 캐릭터 당 세 번에 걸친 카드/유물 해금으로 성장 요소를 가지고 있고, 커스텀 모드나 난이도 조절(승천), 일일 도전으로 상승한 플레이어의 실력 또한 검증해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크게 게임의 장단점을 짚어보자면 아래와 같아요.
장점 요약
1. 이해가 쉽고 단순한 시스템
카드 유형 자체는 총 네 가지(공격 카드, 스킬 카드, 파워 카드, 저주 카드)로 많지 않고, 버프·디버프 역시 매우 직관적이며 카드 사용 시 적용 수치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이해가 편합니다. 물론 전반적으로 랜덤성이 짙어 운에 의존하는 경향도 크지만, 전투 내에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되려 즐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해요.
2. 매우 큰 즐거움을 선사하는 덱 빌딩
무슨 유물을 얻고, 어떤 카드를 얻게 될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으나, 플레이어 실력에 따라 일정 수준 통제 하에 둘 수 있기에 매력적입니다. 잘 안 풀리면 답답하지만, 로그라이크성 덕에 재도전이 부담스럽지 않아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3. 톡톡 튀는 개성의 캐릭터들
각각의 캐릭터가 고유한 특성을 지녀 교차 선택할 때마다 전혀 다른 플레이 경험을 선사합니다. 같은 캐릭터도 획득한 유물/카드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의 플레이가 가능하여 로그라이크 게임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잡고 있지 않나 해요. 다만 승천 고단계로 갈수록 클리어를 위해 강제되는 효율적 덱이 정해져 있는 점은 살짝 아쉽습니다.
4.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매력적인 시나리오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전투 및 부수적인 활동에 사용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스토리는 거의 드러나지 않죠. 답답하다기보다는 플레이 자체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고요. 보통 반복 플레이를 하다 보면 조금씩 드러나는 콘셉트이나 스토리 자체도 매력적입니다.
5. DLC 없이 계속되는 패치
보통 신규 캐릭터가 나오는 등 대규모 패치가 있으면 으레 추가 구매가 뒤따르지만, 의외로 추가 과금 요소가 없는 것 역시 포인트랄까요. 세 번째 캐릭터로 등장한 디펙트는 물론이고, 베타 테스트를 거쳐 추가된 와쳐 역시 DLC 구매 없이 본판 패치로 제공되었죠. 인디 게임임에도 크고 작은 패치로 게임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구매자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관리받는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받도록 해 준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단점 요약
1. 한정된 액션
화려한 모션과 이펙트 등을 기대하셨다면 구매를 말리고 싶습니다. 아트는 매력적이지만, 슬더스 전투에서 타격감을 기대하기는 어렵고요. 사실 CCG에서는 보통 전제되어 있는 사항이기에 솔직히 단점으로 짚고 넘어가기 애매하기도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2. 어려운 덱 빌딩
장점에 넣을까 단점에 넣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 플레이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에 단점으로 넣었습니다. 일단 유물, 카드, 포션 등 모든 것이 각 게임에 부여된 시드에 따라 랜덤하게 등장하고, 한 막에서 플레이어가 택할 수 있는 루트 역시 복수이기 때문에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적입니다. 좋은 유물/카드 유무에 따라 난이도가 들쭉날쭉한 것도 나름 약점이라고 볼 수 있고요. 이걸 어떻게든 즐기려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만, 소위 "억까"에 민감한 게이머라면 지쳐 나가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겠습니다.
로그라이크를, CCG를 좋아하신다면, 2가 나오기 전에 꼭 해 보시길...
요약하자면 슬더스는 글 제목 그대로 단순한 요소들이 모여 심오한 즐거움을 주는 게임입니다. 랜덤한 환경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이 누적되고, 매 전투마다 이를 피부로 느낄 수 있고요. 유일하게 루트가 하나로 정해진 4막에 도달하면 이렇게 만든 덱을 검증받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매우 강한 덱으로 승리하는 것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엔딩을 볼 때가 더 짜릿하지 않나 합니다. 잘 만든 로그라이크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나 카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어두운 분위기의 시나리오를 좋아하는 이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게임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