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테스트로 먼저 만나 본 프로스트펑크 2
2018년 등장해 각종 게임 관련 시상을 휩쓸었던 전작의 뒤를 잇는, 프로스트펑크 2의 베타 테스트가 열렸습니다. 모든 게이머들에게 제공되는 기회는 아니고요. 스팀 등 각종 플랫폼에서 "디럭스 에디션"으로 예약 구매를 진행한 이들에게 한정적으로 진행되는 사전 체험판입니다. 한국 시간 기준으로 16일(화) 02시부터 시작됐고, 22(월) 종료 예정이며,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만 7일 진행하여 동일하게 02시에 닫힐 것 같네요.
한화 기준 일반판은 47,000원, 디럭스 에디션의 경우 (10% 할인가인) 72,430원이 요구되며, 이번 유토피아 빌더 프리뷰의 테스트 이외에도 추후 공개될 3종의 DLC, 게임 내 전용 아이템 (게임 진행에는 큰 관련이 없는 미관 아이템으로 예상), 기타 아트북 등 게임 외 디지털 콘텐츠 특전이 함께 구성이 되어 있어요. 개인적으론 오직 이번 베타 테스트만을 위해 디럭스 에디션을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최소 본판 게임과 DLC를 전부 구매할 예정인 팬이라면, 출시일 전후로 1년 내에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베타 테스트 빌드는 영어와 중국어(간체)만을 지원하며, 매우 제한된 세팅의 1개 지도에서 플레이하는 유토비아 빌더 모드(의 프리뷰 버전)만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이마저도 사실은 프로스트펑크 1의 무한모드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300주까지로 끝이 정해져 있고요. 오랜 시간 기다렸던 게임을 미리 체험해 본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 제약이 많은 편이다 보니, 구매에 확신이 서지 않은 상황이라면 조금 기다리셔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베타 테스트와 7월 정식 출시 전에 게임을 먼저 시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앞서 언급한 비용 문제로 언제 출시하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프로스트펑크 팬들에게는 추천드리지만요.
더욱 확장된 도시 경영, 굉장히 달라진 코어 플레이
전작과 비교해 가장 큰 변화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프로스트펑크 1에서 플레이어는 작은 규모의 생존 공동체를 이끌면서, 텐트나 진료소, 증기 중계기 같은 아주 작은 단위의 건축물 배치까지 직접 관리하는, 다소 마이크로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그래서 말 그대로 "심시티"를 하는 즐거움이 있죠. 문제는 이런 플레이가 즐거울 수 있는 고점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겁니다. 중앙 발전기를 기준으로 일정 시간 이상 확장해 가다 보면, 결국 도시로서는 최대의 성장 지점을 맞닥뜨리고,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스테이지 난이도가 올라가든지, 그 뒤로 사실상 게이머의 흥미가 동이 나버리든지 하면서 게임 플레이가 끝나버리죠. 그렇다고 성장 시스템만 수직 상승이 가능토록 만드는 것도 정답은 아닐 겁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한국인에겐 민속놀이처럼 되어버린 스타크래프트에서, 동일한 UI와 동일한 조작으로 최대 인구수가 200이 아닌 1,000이나 10,000으로 늘어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정 시점부터 게임이 더 이상 재밌지 않을 거고, 노역처럼 느껴질 게 분명합니다. 결국 1의 경우 실제로 이런 시스템 상의 한계 때문에 게임 자체가 결말이 있는 시나리오에 더욱 의존하는 경향이 컸고, 도시 자체에 집중하는 샌드박스 모드는 굉장히 부차적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프로스트펑크 2는, 이런 것들에 대한 개선과 함께, 어떻게 하면 그 뒷 이야기, 더 발전한 도시, 더 커진 생존자 무리들의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하는 듯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개된 개발자 토크에서도 이런 얘기를 직접 하고 있고요.) 우선 건설이 굉장히 다릅니다. 많아봐야 500명 ~ 1,000명 정도 수준의 인구 성장이 가능했던 전작과 달리, 시작부터 몇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운영하고 있다 보니, 단일 건물 하나씩 짓는 것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여러 district (정식 한역이 되면 '지구', '구역' 정도가 되겠네요.) 를 배치하고, 연구와 법령, 그리고 각 district의 발전상에 따라 추가적인 요소를 애드온처럼 달아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콘셉트는 경영 시뮬레이션보다는 문명 6, 엔드리스 레전드 (Endless Legend) 같은 4X 게임들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접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건설 자체만 놓고 본다면 프로스트펑크 1이 훨씬 즐겁습니다. 더 정확히는, 경영 시뮬레이션으로서 프로스트펑크 2는 아예 다른 게임이 되었어요. 건설할 지구를 정해서 대단위의 단지를 운영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경영 시뮬레이션에 더 부합하는 콘셉트인 것은 맞습니다만, 프리셋으로 정해져 있는 건물들의 모습만을 볼 수 있고, 각 건물들에 대해 배치나 사소한 세팅들로 간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도시를 매니징 하는 재미는 덜합니다. 게다가 근본적으론 최대 성장 폭이 정해져 있으리라는 점, 그리고 이 때문에 결국 스토리 라인에 의존하게 되리라는 것 역시 크게 변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고요. 다만 훨씬 많은 생존자들이 있는 거대한 도시의 관리자(steward) 로서,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있는 더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고, 이를 위해 손이 덜 가는 방향으로 시스템 자체가 변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적지만, 그만큼 보람도 덜한 구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방향성을 증명하듯, 게임 내에서 시민 세력들과의 정치 관계가 굉장히 강화되어 있습니다. 전작에서는, 시나리오에서 던져 주는 고정된 미션을 제외하고, 일부 이벤트 발생 시에만 생존에 더 유리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결과적으로 '희망'과 '불만' 수치만 잘 관리하면 문제가 없었기에, 좋게 말하면 편하게 몰입할 수 있었고 반대로 나쁘게 말하면 꽤 단조로웠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런데 프로스트펑크 2에서는 아예 대놓고 진영 간 갈등을 조정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디폴트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성향에 따라 야합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며, 플레이어와 친밀도가 높아질 경우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반대로 찬성하지 않는 법령이 통과되는 경우 파업을 주도해 특정 district 전체가 멈추게 만드는 등 도시 운영을 굉장히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체감 상의 이벤트 보고량 자체도 약간 늘었는데, 이 중에서 도시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대한 건수의 비중 자체도 더 커져서, 전작에서처럼 효율 위주로 법령을 선택하는 플레이가 불가능해졌어요. 시민 갈등 관리의 측면에서는 난이도가 기본적으로 한 두 단계는 더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테스트를 통해, 전작과 똑같으리라 생각하고 프로스트펑크 2를 접하면 적응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물론 발전기를 중심으로 원형의 생존자 도시를 건설해 발전시키면서, 기술 연구와 법령 발의, 인근 지역 탐색과 자원 개발을 이어가며 생존해 간다는 핵심 자체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가시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생산량을 늘리며 추운 기후에서 살아남는 것에 크게 몰두하던 전작과 달리, 이미 방대한 규모로 성장해 큰 유지비가 필요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마주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동시에 실시간으로 이를 함께 하고 모든 결정을 감시하는 각 생존자 공동체(community)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도시는 생존할지언정 리더로서의 플레이어는 살아남을 수 없죠. 도시 내에서의 오묘한 정치적 균형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게임의 피로도 자체는 생각보다 꽤 높습니다. 결국엔 선택지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반복 플레이를 통해 숙달이 이루어지면 쉬워질 것 같기는 하지만, 캐주얼 게이머나 초심자 입장에서는 전작에 비해 배우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까지는 합격점! 추가적인 개선과 시나리오 모드가 더욱 기대돼요.
여기까지 써 놓은 글만 보면 평가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가늠이 안 되실 수도 있겠다 싶은데요. 결론적으로 일단 베타 테스트 기준으로는 모든 DLC를 포함한 전작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차용해 왔고, 이를 적절히 개선 & 발전시켜 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건축이 간소화된 대신 시민 공동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내 정치는 훨씬 더 섬세해졌고, 법령과 연구의 선택지가 불러올 수 있는 후폭풍을 고려하여 심사숙고해야 하기에 단순 경영 시뮬레이션 그 이상의 게임이 되었습니다. 정식 출시까지는 아직 3개월 남짓한 시간이 남았지만, 일단 샌드박스 모드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게임 본판의 내용물은 꽤 매력적이었고, 잘 다듬어서 내놓는다면 전작에 이어 장르의 지평을 더욱 넓혀 나가는 멋진 게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아직 튜토리얼이 부족하여 변화된 게임 플레이를 익히는 게 힘들고, UI/UX 측면에서 직관성이 떨어지는 상황인 데다, 각종 정치적 이벤트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의회 활동이 입문자에겐 까다로운 편이라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나쁜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는 3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충분히 개선 가능하리라는 판단이 들어 두고 보아도 좋을 것 같고요. 애초에 프로스트펑크라는 게임 자체에 게이머들이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것에는 시나리오의 힘이 컸기에, 정식 발매 때는 이런 기술적인 재료를 가지고 어떤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을지,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그래서 출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팬 입장에서는 갈증을 줄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빨리 출시 스펙의 게임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하는 베타 테스트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