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6.5/10, 추천!
집안은 풍비박산, 학교에선 일진 숙제 셔틀인 고교생, 사채왕이 되어 군림하다! 다분히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범죄의 길의 흥망성쇠. 승자가 없는 제로섬 게임, 나름 무거운 주제의 청춘을 가벼운 톤으로 잘 그려낸 오락 영화.
"너, 내 밑에서 일 해라."
영화 사채소년은 다분히 정직한 영화입니다. 제목만 인지하고 예고편만 보아도, 거의 내용의 70% 이상은 이미 알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데요. 가정 형편도, 학교 생활도 더 나빠지기가 어려운 소년 이강진이, 부모 빚을 받기 위해 집을 들락거리던 사채업자 최랑의 제안으로 고교 전담 수금원이 되면서 일어나는 다크 판타지와 같은 일들을 그리고 있는 청춘 드라마입니다. 직전에 리뷰했던 영화 서울의 봄과 같은 11월 22일 자로 개봉했으나, 국내 관람 2만 명 수준으로 성적은 저조한 편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물론 한눈에 보아도 비교적 저예산 영화고, 눈길을 끌만한 스타 캐스팅도 없지만, 적어도 극장에 가서 킬링 타임 하기엔 부족함은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고등학생들, 진짜 이렇게 논다고?
영화 내용은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듭니다. 교내에서 일진과 힘없는 자 사이의 역학 관계는 꽤 현실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느낌이고요. 평가자마다 연기에 대한 평이 엇갈리고 있는데, 몰입감은 정상급 배우들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하지만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 있을법한 상황들을 크게 이질감 없이 그려내고 있어서 저는 별문제 없이 봤습니다.
사실 다소 어색한 것은 설정적인 장치들인데요.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골드 클럽"의 비현실적인 모습이나, 지나치게 양지에서 설치고 다니는 사채업자의 모습 등은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로 무리수와 같은 느낌을 주어 아쉽고요. 고찰 없이 만들어지는 각 인물의 계략 및 실행이 별다른 노력도 없이 서로에게 던져지고 또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알파고와의 바둑과 같은 두뇌 싸움보단 가위바위보 내지는 OX 게임(틱택토)을 관전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흑막 마스터마인드가 나오는 범죄물을 생각하신다면 실망이 크실 겁니다. 다만 인물들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하는 빠른 이야기 전개를 보이는 사채소년의 특성상, 이런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내용을 시원시원하게 보고 넘길 수 있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에 던지는 경고
여느 청춘 드라마들과 마찬가지로 사채소년에서도 고교를 배경으로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조금 식상하지만, 돈의 노예가 된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한 번쯤 점검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까 해요. 금전적 능력이 없는 고등학생들 사이로 사채가 침투한다는 설정 자체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과시 수단, 학력 수준이 되고, 교내 서열을 만들어가는 실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판타지라는 이유로 마냥 엉터리로 치부하는 자세 역시 별로 설득력은 없습니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점은 바로 승자는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넉넉한 주머니 사정을 토대로 일진 행세를 하는 남영과 그 패거리들, 흙수저가 돈을 벌기 위해선 남에게서 뺏어야 한다며, 돈을 최고선으로 삼는 사채업자 최랑, 심지어 권력의 맛을 보고 학교에서의 계층 상승과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 일행까지, 아무도 행복한 결말을 맞지 못하는데요. 초중반을 아우르는 강진의 범죄 활극은 나름 호쾌한 맛이 있지만, 줄거리를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면 폭력과 범죄를 미화하고 있지도 않고요. 돈 역시 만능은 아니라는 점, 금전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지만 그게 꼭 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관객들에게 은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P.S.
사채소년에는 엔딩 크레딧 시작 전 아주 짧은 쿠키가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실 필요는 없고, 관객들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즈음 나오니 놓치지 않게 주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