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황당한 어느 한겨레 칼럼을 읽고...
새벽에 자려고 누워서, 잠깐 구글 추천 뉴스를 보다가 어처구니가 없는 글을 읽고 잠깐 열을 좀 받았네요. 한겨레에 실린 정덕현 평론가 칼럼 때문입니다. 원래 제목은 '오징어게임:더 챌린지'가 경고한 K콘텐츠의 위기 였던 것 같은데, 일요일 자정 전에 현재와 같이 수정하셨네요. 일단 잠은 자야 하니, 링크만 따 두고 할 얘긴 낮에 해야겠다 싶어서 지금 들고 왔습니다.
‘오징어 게임:더 챌린지’, K콘텐츠는 이 게임에 참가 못 한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넷플릭스·2021)이 미국에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오는 22일 공개된다. 10부작 ‘오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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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 쇼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문제입니까?
위 칼럼에서 문제가 된다고 보는 것은 미국에서 제작된 서바이벌 예능인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입니다. 픽션인 오징어 게임 1의 내용을 차용, 참가자 456명이 우승 상금인 456만 달러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쇼인데요. 글쓴이 정덕현 님과 다르게 저는 시사 관람 쪽으로는 공인이 아니라 미리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딱히 내용이 궁금하진 않습니다. 서바이벌 게임 장르를 찾기 어려운 세상도 아니고, 일부 신규 게임을 추가했을 뿐, 메인은 드라마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것이 이미 타이틀에서부터 자명하게 보이는 프로그램이니까요.
링크의 글을 읽다 보면, 굉장히 짧은 토막글인 만큼 논조가 순식간에 이상한 곳으로 흘러서 황당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우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이기에 넷플릭스에 귀속된 IP이며, 이를 바탕으로 만드는 예능을 미국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는 점부터요.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때 한화 기준 수 십억 대부터 100억 수준의 자본을 뚝딱뚝딱 투자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엄연히 회사에서 큰 금액을 투자해 만든 콘텐츠인데, IP 소유권을 가진 넷플릭스가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K-콘텐츠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발상은 너무나도 비약 아닙니까?
아니면 이제 와서 외국계 대형 자본이 콘텐츠 업계까지 잠식하고 있으니, 보호무역이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까?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우리가 만든" 신토불이식 가치관을 강조하시는지, 공감이 어렵습니다. 당장 오징어 게임 1에서, 제작진, 출연진이 돈을 벌어도 애초에 관계자가 아닌 K국민에겐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언제 변한 적이 있었나요? 더더군다나 멀쩡히 국내 자본으로 만든 아이템을 뺏긴 것도 아니고, 넉넉한 제작비와 보상을 받아 가며 만든 프로그램인데, 외국에서 잘못 읽으면 문화적 도용 취급한다고 오해받겠습니다.
타겟층에 대한 몰이해도 두드러집니다. 오징어 게임이란 IP 자체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평가받는 것부터가, 작디작은 내수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어필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팬덤이 애초에 전 세계에 있는데, 굳이 대부분의 캐스트가 한국인인 한국어 콘텐츠로 재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전 세계에서 공용어의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영어이죠. 실제로 영어권에서의 오징어 게임 인기가 높았고요. 비 영어권 국가에서도, 자막을 달아 줬을 때 수용률이 더 높은 것은 분명 한국어가 아닌 영어 콘텐츠일 겁니다.
이쯤 되면 정덕현 평론가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K-콘텐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합니까? 100% 국내 자본으로만, 국내에서 판권 포함 모든 권리를 가진 상태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출연진만 기용해 프로그램을 짜야합니까?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었던 본인부터 기획서 하나 들고 성공해 보시죠.
하지만 진짜 열받는 내용은 따로 있었습니다. 글이 점입가경이라서요.
소위 "평론가"라는 분들이, 마치 콘텐츠 제작자들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것마냥 삿대질을 해서 논란이 되는 건 동서고금 유구한 역사죠. 미국에서도 그렇고, 유럽에서도 그렇고, 하다 못해 당을 등에 업어 권력자의 시각을 가진 비평가와, 그에 반발하고 눈치를 보는 제작자의 불쾌한 관계가 있었던 공산권 소비에트 연방에서조차 그랬습니다. 도대체 이런 촌극이 2020년대 와서도 왜 끊임없이 이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평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 인간적으로 존중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한국 창작자의 자신감이 과잉"
"기획서 하나만 있으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거품"
우선 첫 번째로, 학창 시절부터 여러 해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으로 굴러 보셨던 입장에서, 달랑 기획서 한 장만 기깔나게 쓰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서 본인은 왜 시도도 못 하시는지요?
연세공감 | 연세소식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대단함 깊고 따듯한 시선으로 콘텐츠를 해석하는 사람, 정덕현 문화 평론가(국어국문학 87) 가장 주목받는 문화 평론가 정덕현 동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콘텐츠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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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오징어 게임을 배경으로 한 예능만 해도, 기업 수준이 된 인플루언서인 미스터 비스트(Mr. Beast)가 이미 몸소 주최하여 가능성까지 확인해 준 마당에, 왜 넷플릭스에 제안서는 안 써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국민이 대통령 욕 한다고, 구단 팬이 선수 욕 한다고 "네가 더 잘하겠냐?"라고 일갈해선 안 되겠지요. 근데 본인은 학원까지 다니고, 독립 영화 만들면서 해 보셨지 않습니까? 말이 쉽죠, 말이.
"고임금 스태프들도 늘면서 드라마 제작비가 가파르게 상승"
또한 이것도 결국 지망생에서 실무자로 넘어가지 못해 오는 무지함에서 오는 가벼운 발언 아닙니까? 아니면 넷플릭스, 디즈니+와 비교해 같은 금액은 고사하고 한 두 단계 낮은 돈도 지급할 수 없는 국내 제작·배급사를 대변하는 겁니까? 한국 디지털 콘텐츠 제작 종사자 대부분은 업무량 대비 만성적인 저임금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그나마 돈을 더 잘 벌어 오던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엔지니어/테크 직무를 중심으로 하여 전반적인 처우 개선이 먼저 진행되었고, 평론가님 당신의 말마따나 K-콘텐츠 위상이 상승함에 따라 최근엔 방송·영화·음악 필드에서도 대우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상황일 뿐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이 말입니다. 심지어 이런 개선이 완벽한 것도 아니지만, 각 업계에서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아닌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꿈만 같은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태프의 고임금화를 콘텐츠 제작의 어려움으로 꼽는다? 정덕현 님과 같은 시각을 가지신 제작사/투자사 헤드급이 계시다면요, 투자받아서 다른 사람 고용해 쓸 생각 마시고 제작 직접 배워서 자기 시간으로 직접 하십시오. 저임금이 일상화되어 있는 업계에서조차 부하 직원들, 프리랜서들에게 줄 돈이 없다면 그냥 1인 미디어 하시는 게 낫습니다. 요즘 또 그러시기에 플랫폼 조건이 얼마나 좋습니까? 물론 최정상급 연예인이나, 일부 스타덤에 오른 PD 등 제작진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금액을 받아 간다는 사실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비판에서 이들과 일개 피고용자들을 같은 선상에 올린다? "스태프"라는 단어로 제가 언급한 높은 인지도의 제작자를 지목하신 거라면 단어 선택 불찰이오, 두루뭉술하게 스태프 전체를 싸잡아 평가하려 했다면 이는 미안하지만 무지의 소치입니다.
도대체 OTT 서비스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작을 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얘기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케이드라마 미래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
"토종 오티티들이 케이콘텐츠가 그려내는 장밋빛 미래에 무리하게 투자했던 것이 이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미안하지만 공감이 어렵습니다. 우선 국내 OTT의 실패는 단순히 강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일부 원인이 되기는 하나, 이걸로 전체를 해석하려 하면 문제가 됩니다.
우선 제일 큰 문제는 가입자 숫자에 따른 규모의 차이로 발생하는 수익성의 격차입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몇 개가 있네 없네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건 알면서 투자한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에, 누구 탓할 게 없습니다. 투자는 본인 책임입니다. 심지어 바로 그 넷플릭스조차 디즈니+ 등 다른 대형 플랫폼의 대두, 그리고 이어지는 구독자 정체로 주가부터 반응한 게 현실이고요.
OTT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보여서 첨언 하자면요. 넷플릭스 하면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이 뭡니까? 바로 빈지 워칭(binge-watching)입니다. 구독자 절대다수는 무슨 평론가처럼 한 편, 한 시리즈 보고 나서 한나절씩 곱씹고 시청 소감 작성하지 않아요. 일단 하나 보고 나면, 알고리즘 추천으로 뜨는 다음 콘텐츠를 찜해 두고, 또 보는 식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취향 꼬리물기입니다. 무조건 최신에, 엄청난 완성도를 가진 초대박 콘텐츠만 시청하는 행태가 아니란 말입니다.
국내 OTT는 이게 거의 불가능하죠. 타겟층이 너무 편협한 것, 콘텐츠가 너무 적은 것이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 중에 하나는 맘에 드는 게 있겠지" 식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 말입니다. 낮은 확률로 그렇게 구독자가 된들, 이어 볼 콘텐츠가 없어서 이탈합니다. 국내 OTT 중 그나마 선방하는 서비스 상당수가 지상파이든 케이블이든 기성 방송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도 이를 보완하기 위한 시도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게다가 오리지널 콘텐츠라고 항상 흥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넷플릭스에서도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로 오리지널 시리즈의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사실 이미 그 전년도 나왔던 '릴리 해머'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도 넷플을 켜 보면 유럽, 동남아, 일본, 미국 등 각지의 듣도 보도 못한 '오직 넷플릭스에서' 콘텐츠가 쏟아집니다. 그 작품들이 하나같이 전부 다 성공했을까요? 글쎄, 국내 OTT 뷰 숫자에 비하면 훨씬 높겠지만, 아마 넷플릭스 내부 기준으로 보면 시청률이 그렇게 높진 않을 겁니다. 프로야구 타율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기본적으로 다작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리지널 콘텐츠 몇 개 만들어서 OTT 자체가 대박이 날 정도의 성공을 기대했다면, 그건 욕심 아닐까요?
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시나요?
결국 정덕현 님이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우리"는, 제가 봤을 때는 콘텐츠 업계 종사자가 아닌 투자사의 입장으로 결론 내려도 될 것 같네요. 제작자 입장에서 글을 읽으면 "대형 해외 자본에 IP 팔아먹지 말고, 한국인이라면 제발 단가 낮아도 일단 한국 자본으로 만들자!"라는 결론으로밖에 귀결이 안 되니까요. 설마 해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셨겠습니까?
그리고 도대체 그놈의 "완성도 높은 대본"은 누가 판단합니까? 상업 영화는 100% 예술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제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도 너무나 많습니다. 대본 소믈리에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시나리오로 작품을 만들어도, 쪽박을 찰지 대박이 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너무나도 기념비적인 SF 시리즈인 '스타 워즈'조차, 처음엔 여러 영화사에서 퇴짜를 맞다가 20세기 폭스의 선택을 받아 저예산으로 겨우겨우 만들어진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 다시 해 보시길 바라요.
오해하시는 점도 있는데, 제작자 입장에선 원래 콘텐츠 업계는 더 가혹했습니다. 예전엔 더 심했죠. 최대한 후려치는 단가의 투자자들 바짓가랑이를 잡기 위해서 많은 제작사들이 오징어 게임을 했습니다. 해외 공룡 OTT들이 한국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게임 체인저급 대규모 자본이 들어온 것뿐입니다. 제작자 입장에선 그저 옵션이 늘어난 것이죠. 여기서 손해를 보는 게, 과연 국내 투자사일까요, 제작사일까요? 짬이 있으신데, 설마 이걸 이해 못 하시진 않겠죠. 때문에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과거 평론가님 본인이 직접 하셨던 인터뷰에서의 발언으로 갈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