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라는 개념이 주는 어색함
누구 물어본 사람 하나 없는,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글이죠. 왠지 티스토리보단 브런치에 어울리는 제목이지만, 어쨌거나 일을 쉬고 있습니다. 직전 직장에서도 공백기 없이 환승 이직을 해서, 졸업 후 n년 간 따로 갭 없이 직장인으로서 업무를 해 왔는데요. 그래서 쉬는 기간이 많이 어색합니다. 학생 신분일 때까지만 해도 할 일이 산적한 와중에 친구나 연인과 놀러 쏘다니고, 하다 못해 집이나 PC방에서 몇 시간씩 게임을 하는 것에 별 죄악감 따위 가지지 않았는데, 막상 어떤 굴레도 없이 모아 둔 잔고만 가지고 쉬고 있으니 현실의 중압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이미 전세다, 갭투자다 해서 집을 구한 친구들, 좋은 학교를 나와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에서 대부분의 또래가 받지 못하는 소득을 받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반대로 금전적인 성공엔 학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나름의 비전으로 빠르게 사업에 나서 몇 년분의 수입을 앞서 가는 친구까지 다양한 인재들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는 금물이라지만, 어쨌거나 다들 앞으로 달리고 있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제자리에 남아 경제적으로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아니, 당장 현 상태가 얼마나 유지될까 하는 위기감도 있고요. 빚도 없고, 당장은 통장이 버텨 주고 있지만, '내년엔 어떡하지? 내후년엔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걱정이 수시로 머릿속, 그리고 가슴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걱정하는 일의 상당수는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디다. 그게 전체의 40%니, 90%니, 주장하는 이마다 비율은 서로 제각각이지만, 어쨌거나 실제로 우리의 걱정 중 상당수는 허황된 내용이고, 일부는 어차피 일어날 일이니 걱정보다는 대비가 필요하고, 일부는 걱정할 필요도 없는 하찮은 일이고, 일부는 내가 걱정한다고 대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아봐야 삶의 질만 하락시킨다는 점은 아마 모든 분들이 공감하실 것 같은데요. 저도 걱정은 줄이고,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실천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요.
몸 두고 있는 업계에서 느꼈던 배신감
그래서 마냥 놀고만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요. 사실 원래 업계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정말 재밌는 일이고, 뿌듯한 일인 것은 맞습니다. 좋은 분들도 많고, 그들에게서 배운 것들, 함께 일하며 즐거웠던 기억들도 많고, 그래서 사실 복귀한다면 아마 이런 것들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해요.
그럼 왜 고민하느냐, 우선 경제위기 등으로 구인·구직 빙하기가 온 점이 좀 크고요. 나름 운신하며 외적인 상황을 보아야 하는 시기가 와버렸습니다. 이건 현재 퇴사 하셨거나 이직을 노리는 분들이라면 다들 비슷하게 느끼고 계실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동종 업계라면 어느 회사를 가나 변하지 않는 동일한 구조적 병폐를 느꼈고, 이는 단기간 내에는 자정이 불가능하리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영영 개선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업계 입문 선배나 동기들도 동일한 내용을 몸소 겪으며 힘들어하고, 일부는 아예 업계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곁에서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자질구레한 것보다, 글 제목에서도 내질렀지만 직전 직장의 대규모 채용에서, 공고 내용과 다른 업무 내용의 취업 사기를 당해서 신뢰를 많이 잃었습니다. 원래도 직원을 부품처럼 안다는 평이 꽤 있는 업계이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따로 업종 따지지 않고 판교 내에서만 봐도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에도 속하는 곳에서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나한테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안이하게 생각했던 탓에 충격이 좀 컸습니다.
이직을 진행한 해당 포지션은 커리어와 맞지 않는 (그리고 99%의 확률로 동료들에게 물경력 취급 당할) 조직의 TO였고, 채용 진행 당시엔 비밀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오신 분들 중 정작 해당 조직에 맞는 직무의 지원자에게는 어떤 조직인지 상세하게 안내하셨더라고요. 그렇게 안갯속에서, 처우 협의 당시 빨리 정리하고 최대한 빠르게 입사해 달라는 임원급 관리자의 부탁에 응해, 전전 직장에 빠르게 퇴사 절차를 밟았던 것이 돌아보면 너무나도 억울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 수 없었죠.
일단 와 보니 직계 조직장들이 "OO 씨 직무 유관한 업무를 부여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길래, 미련하게도 그런 공수표를 들고, 수습기간 무슨 핑계로 잘릴까 조마조마해하며 생계 걱정으로 즉각 문제화하지 않았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 가득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이직자 혹은 이직 희망자 분이 계신다면, 옮긴 포지션에서 취업 사기가 의심된다면 무조건 빨리 이의 제기하세요. 물론 사측에선 다른 이야기를 할 테지만, 채용 TO를 끌어다 쓴 관리자, 채용 전반을 핸들링한 지원부서와 채용팀 모두 책임이 있는 이런 사안에도, 수습 기간으로 정해 둔 기간이 지나면 책임 소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이의 제기를 해도 구제를 안 해주려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내 정치 역학 상 책임을 지고 싫은 소리를 듣거나 하고 싶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뭐 하는데? 뭐 할 건데?
그래서 시야를 넓혀 보려고 하고 있어요. 기존 업계 공고도 종종 둘러보지만, 일하던 업종, 직무 말고 다른 즐거운 일은 없는지 함께 찾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B2C이든 B2B든 뭐든 간에, 사용하는 동안 고객이 만족감, 즐거움을 가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일을 하고 싶다는 나름의 희망 사항이 있어, 전직을 한다면 도움이 될까 싶은 공부도 함께 하고 있고요. 상황에 따라 구직 기간이 길어질 것 같아 마음도 더 차분하고 단단하게 만들고자 하고 있어요.
사실 티스토리도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놀기만 하는 여가활동보다는, 그래도 기록이라도 남기는 나름 생산적인(?) 취미를 가지고 싶었고, 잘 쓰지는 못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지도 않고요. 글이 누적되고,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받고 나면 소소한 용돈 벌이는 되지 않을까 하는, 백수 구직자로서 나름의 욕심도 물론 계산에 있었습니다. (참고로 아직 승인을 못 받았고, 구글 애드센스 계정을 연동해 놨다고 카카오 자체 애드가 먼저 떠 버리네요.) 머리에서 소용돌이치는 다양한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 글을 쓰며 이성과 마음 모두 충만하게 채워 보고 싶다는 점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내가 아는 것들, 특히 알고 나면 별것도 없는데 (왜냐면 나 같은 놈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은 불균형한 정보가 없진 않다는 걸 느끼고선 글을 써서 공유하는 취미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여러 카테고리에선 이미 포스팅을 시작했지만, 아마 오늘 새로 만든 이 Working Life 카테고리에서는 직장에 다니면서 배운 것들,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볼까 해요. 물론 궁금한 사람이 있기야 하겠냐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는 내용은 있겠죠. 업계도, 직무도 밝히긴 좀 껄끄럽지만, 언젠가 진짜로 전직을 하고 나면 좀 더 자세한 내용도 쓸 수 있을 테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취준생이나 신입 직원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나 인사이트(라는 게 저한테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같은 것들을, 스스로 복기해 본다는 차원에서라도 써 내려가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