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 미달 리더 밑의 부하 직원은 고통스럽다.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영역이든 정말 수없이 많고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실무자로서 가장 큰 스트레스 발원지는 아마 팀장일 겁니다. 요즘은 특히나 사수 개념도 점점 흐려지고,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식으로 직책을 쪼개 놔서 "내 밑으로 다 집합" 한다던가, 몰래 '쪼인트를 깐다'던가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반면, 프로젝트/실무 단위로 팀장을 세워 놓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시키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팀에서의 업무는 점점 애자일 하게 돌아가고, 동시에 차곡차곡 고도화 역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능력 없는 리더 밑에 있으면 일감을 가져와 맡아서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 됩니다. 흔히 "멍부"라고 조롱받는, 비전은 없는데 '뭔가 한 척하려고' 내지는 '유관 부서/관계사 기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말도 안 되는 일만 추가로 벌이는 팀장 밑에 있으면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럽죠. 오늘은 제 과거 경험 상 타산지석 삼을 만한, 이런 하자 있는 분의 사례로 리더 하면 안 되는 사람의 특징을 되짚어 볼까 합니다.
업무의 중요도, 우선순위조차 책정할 줄 모르는 사람
제가 N사에서 만났던 어느 팀장 P는 업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줄을 모릅니다. 1년 중 팀에서 필수적으로 수행되는 루틴한 업무나, 반대로 일회성이거나 긴급 대응이 필요한 돌발 이벤트성 업무를 모두 아울러, 이들의 경중, 처리 우선순위, 그리고 업무 완료 후 실제 프로젝트에서의 기여도 따위를 전혀 산정할 줄도 모르죠. 이렇다 보니 정작 적재적소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팀원들에게 엉뚱하고 희한한 업무를 부여하고, 또 그걸로 유관부서와 관계사의 리소스까지 허비합니다. 결국 프로젝트 자체의 퍼포먼스가 떨어지면서 매출에까지 직격탄으로 꽂힙니다. 그런데 자기는 바쁘게 보냈고, 관계인들과 모두 논의를 거쳤으니 잘했고,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들어오는 간언은 전부 깔아뭉개고, 직언하는 실무자들을 불순분자 취급 하면서요.
꼴이 이러니 팀 매니징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인사평가 역시 공정할 리가 없겠죠. KPI 산정이니, OKR이니 하는 것들은 P에게는 너무나도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모두 윗선에 보고서 올릴 때나, 마치 있는 것처럼 꾸며 쓰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았죠. 분기 피드백을 아울러 실무자의 1년 평가를 하면서, 자기 의견에 고분고분한 인원들, 장단을 맞춰서 자신과 함께 이상한 아이디어 피칭으로 팀원들을 괴롭히는 사람들, 낮엔 놀다가 굳이 저녁까지 회사돈으로 먹고 나서 밤에 일 하는 이들, 담배 피우러 같이 다니는 팀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줍니다. 제대로 된 "정치질"이라는 게, 이런 위인들에 의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저는 처음 느꼈는데요. 그렇게 마케팅 사이드, 웹 사이드, PM 사이드 실무자들의 사기가 박살이 납니다. 누군가는 이직을 하고, 누군가는 회사 내 전환배치 가능한 부서들을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정작 팀장 P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팀원들 사기가 낮고 팀 내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공개적으로 한탄하죠. 결국 프로젝트 공중분해를 눈앞에 둔 현재까지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강약약강, 상급자에겐 입에 발린 소리만, 부하 직원에겐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
이렇게 실적이 계속 나빠지니, P 자신이 빠져나가야 할 구멍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본부장을 거쳐 대표에게까지 도달하는 그의 월별 보고서에는 (자신이 피치 하고, 자신이 통과시킨) 실무자들의 업무에 따른 결과에 대한 코멘트가, 모 전 대통령식 '유체이탈화법'으로 빠지지 않았습니다. 유관부서나, 특히 을 포지션의 관계사 실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이를 절대 놓치지 않고 회의에서 한바탕 소란을 냈죠. 그래서 한동안 이들과의 협업이 적대적 분위기로 돌아갔던 경험은, 온전히 실무자들에겐 짐이 되기도 했네요. 이는 물론이고 퇴근한 직원에게 (심지어 직전까지도 주 52시간 근로제 위반을 강요하다 HR에서 징계를 받고 나서도!) 업무 대응을 강요한다던가, 업무 상 사소한 과실이 있을 경우에도 파티션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물론 자기 라인 직원이 아닐 때만 해당하는 이야기지만요.
사무실과 회의실에서 틈만 나면 실무자에게 화가 나 쉭쉭거렸던 "압력 밥솥" P 팀장은, 과연 윗사람에게도 동일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었을까요? 아쉽게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상급자가 무슨 말을 하면 기본적으로 배를 까 뒤집고 드러눕는 게 일이었죠. 관련해선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팀원들이 가져온 안건(이를 A라 하겠습니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온갖 핑계를 대며 B안/C안/D안을 요구했던 P가, 프로젝트 실무에 핸즈온 하고 있었던 부본부장 E와의 회의에서 차안들을 보고하다가, (당연히 이런 배경 이야기를 알고 있을 리가 없는) E의 "이거 그냥 A 방식으로 하면 안 돼요? 뭘 이렇게 복잡하게 꼬아 놨어" 한 방에, 그대로 변명 한 마디 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던 일은 지금도 팀원들 사이에서는 '실무자들에게 들이댄 그 휘황찬란했던 무적 논리는 어디로 갔을까?' 내지는 '저렇게까지 줄타기를 해서 정치질을 해야만 할까?' 하는 느낌으로 측은하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부하 직원들, 유관 부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이쯤 되면 P가 조직에서의 관계를 거의 도구처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대충 직감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실무자들은 실적 제조기 내지는 책임 전가책에 불과했고, 임원급들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한 동아줄인 셈이었죠. 그런 그를 '소시오패스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만든 일도 있었는데요. 아시다시피 어떤 프로젝트이든간에 일정 관리는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도 탄력 있는 업무 사이클을 위해 원활한 일정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규모가 큰 프로젝트, 그리고 다른 조직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죠. 비교적 큰 규모였던 프로젝트에서, 관계사와 P의 5:5 정도 되는 과실 덕분에 일정 자체가 무너져 내렸고, 그래서 PM들이 양사의 상급자들을 모셔놓고 모여서 일정 재수립 및 일정 관리 방법 개선 협의에 나섭니다. 말이 개선이지, 사실은 P에게 우선순위가 낮은 돌발 업무를 당연하다는 듯이 던지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물론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죠. 오히려 양사 실무자 입장에서는 다들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는 바로 다음 주에, P가 실무자들에게 바로 그 협의를 깰 것을 지시하면서 발생합니다. 본인이 주요 발제자 중 한 명이었던 바로 그 논의 내용을, 한 주도 되지 않아 바로 손바닥 뒤집듯 바꾸라고 종용했던 건데요. 최소 3주는 더 필요한 업무를 (위에서 언급했던 방식으로) 갑자기 만들어 내, 관계사에 완수해 오도록 지시한 겁니다. 상호 협의한 일정 내 완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코멘트에 P가 내놓은, "그분들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매출보다 높대요? 우리 매출에 영향 줄 정도로 받으시는 것 아니면 야근비를 타든 심야 근무를 해서라도 해 오라고 하면 될 것 아니에요." 하는 대답에, 주변의 모두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죠. 물론 이런 불편한 요청은 실무자가 해야 했고, 당연히 돌아온 대답은 "불가"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원인미상으로 P의 기분이 좋아지면서, 황당무계했던 해당 업무 지시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고, 그렇게 팀원들이 안도하게 됐던 기억이 나네요.
그에게 감투를 씌워 준 인사권자들, 진짜 문제는 바로 당신들이다.
팀장 P는 저와 동료들이 팀에 합류한 이후 끊임없이 자신의 보스인 실장 K와의 친분을 과시했습니다. 항상 식사를 함께 하네, 술을 같이 마시러 가네 같은 싱거운 이야기는 물론이고요. 현재의 N사에서 동반 퇴사해, 관계사 중 하나인 J사에 몸 담았다가, 다시 자기 가치를 높여 지금의 조직으로 돌아왔다는 둥의 이야기들을 영웅담처럼 늘어놨죠. 자기 라인에 붙으라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S대 출신이자 현재 대형사 임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K에게 예쁨 받고 있는 대단한 자신을 알아달라는 자랑인 건지, 도통 목적이 불분명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일단 정정당당하게 대규모 채용에서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본 뒤 합격한 저로서는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뭐, 윗선으로 갈수록 요즘 세대가 익숙하게 느끼는 "공정한 채용"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요. 저런 걸 공개적으로 떠벌리는 게 과연 미덕인지, 모럴해저드가 아닌지 하는 개인적인 의문에는 아직까지도 판단을 보류하고 있습니다.
사실 실무자로서 이보다 중요한 건, 실제로 그런 실장 K와의 관계 덕에 팀장을 맡은 P가, 적어도 자신의 공국(公國)과 같은 팀 내에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뛸 수 있었다는 것이었죠. K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기보단, 반대로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팀 상황에는 관심이 없는 방목형 관리자였기에, 팀장의 정치 서클 바깥의 팀원들은 희망을 잃고 낙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급했던 것처럼 P는 팀원에게 주 52시간 근무제를 업무 정지나 연차 등을 악용하는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위반하게 종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K와 함께 이 사실로 징계를 받은 뒤로도 해당 내용을 팀 바깥으로 누설한 팀원을 색출 시도하여 결국 특정해 내고서는, 인사상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해당 인원에 대한 흠을 찾기 위해 나머지 팀원들을 한 명씩 불러 면담을 했을 만큼 팀 내부에서는 안하무인이었는데요. 이 외에도 불법적인 연차 반려 등 P에 의해 자행된 여러 조직 내 부조리함이 인사팀과 감사팀으로 알려졌지만, 그에게는 징계나 제지는 커녕 개인적인 경고 조치 하나조차 내려지지 않았죠. 지원부서에서조차 막아 주지 않는 그의 폭정에 실무자들은 다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 불가능한 기업 오너가 아니고서야, 망나니 팀장같은 건 사실 문제적 개인에 지나지 않죠. 사규가 멀쩡하게 존재하는 건강한 기업이라면, 해당 인원의 상위 인사권자 내지는 HR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만, 모든 것이 친분과 정치를 우선해 돌아가는 상당수의 회사들에서는 솔직히 꿈만 같은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적극적인 노조 활동,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같은 실무자들의 법적 보호 수단이나 노동청의 적극적인 기업 관리에 긍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