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포켓몬스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IP라고 보아도 무방할 겁니다. 애초에 비디오 게임보다도 애니메이션으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보니, 포켓몬 자체가 게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분들도 있을 정도니까요. 영화로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고, 각종 굿즈 상품도 많고, IP를 이용한 실물 CCG도 별도로 있습니다. 시리즈 세대별로 등장·활약하는 포켓몬이 달라지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본인이 즐겼던 콘텐츠와는 다른 시점의 작품들에 생소함을 느끼시는 경우가 많지만, 적어도 '피카츄' 같은 아이콘적인 포켓몬들은 누구나 알고 있고, 또 좋아하니까요.
다시 비디오 게임으로 돌아와 볼까요. 원래 포켓몬스터라고 한다면, 흔히 "본가" 시리즈로 불리는, (휴대용) 콘솔 플랫폼이 주력인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포켓몬 레드, 골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다이아몬드 등, 게이머라면 이 중에서 하나 정돈 다들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게임들이 있죠. 턴제 전투를 채용한 수집형 트레이너 RPG 장르로, 현재 9세대인 스칼렛·바이올렛까지 나와 있습니다. 특이한 것이라면, 대부분의 세대에서 주력 타이틀을 꼭 2개로 쪼개 놓는다는 점인데요. 같은 세대 타이틀이라면 서로 콘텐츠 차이가 없으나, 수집 가능한 포켓몬의 종류 자체가 달라지는 것을 내세워 "나눠 팔기"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무척 불호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게임들에는 DLC까지 별도로 판매하고 있어, 한 세대의 모든 포켓몬을 보고 싶다면 타이틀 2종 + DLC 2편을 각각 다 따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죠.
어쨌거나, 개발사 게임 프리크(Game Freak)의 전통적인 RPG 시리즈에 주력하던 포켓몬 게임 흐름에 지난 몇 년간 꽤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정도인데요. 우선 본가에서부터 Pokémon LEGENDS 아르세우스처럼 장르 변주를 주기 시작했고, 스칼렛·바이올렛의 경우에도 오픈 월드 탐험 등을 적용하며 대세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고요. New 포켓몬 스냅, 돌아온 명탐정 피카츄 등 기존 외전의 후속작 역시 열심히 출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변화는, 스위치뿐만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이용 가능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꽤 많이 등장시켰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포켓몬 게임은 보통 거치형 콘솔이나 3DS, 스위치 등에서만 이용 가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큰 변화인데요. 살아남아라! 개복치 개발사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 튀어올라라! 잉어킹, 이젠 너무나도 유명해진 Pokémon GO, 퍼즐 게임인 Pokémon Café ReMix, 첫인상부터 마인크래프트를 연상시키는 포켓몬 퀘스트, 왕자영요 개발사를 통해 만든 MOBA인 Pokémon UNITE, 그리고 이번 글에서 소개할 포켓몬 슬립(Pokémon Sleep)이 그렇습니다.
수면 계측 어플? 모바일 게임? 이건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위에서 언급한 모바일 플랫폼의 포켓몬 게임 중 포켓몬 슬립은 23년 7월 등장한, 비교적 최신작인데요. 공식적으로도 게임성보다는 수면 관리 애플리케이션으로서의 역할을 더 앞세워 강조하고 있어, 이게 과연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들기는 할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겠다 싶어요. 사실 제 경우도 (포켓몬)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수면 관리 어플을 써 볼까 싶었던 참에 마침 익숙한 포켓몬 게임/앱이 나와 귀엽다는 생각에 설치하여 사용해 오고 있거든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포켓몬 슬립, IP의 정수 중 하나인 '도감 작업'을 콘텐츠적으로 잘 풀어낸, 캐주얼하면서도 생각보다 좋은 게임입니다.
1. 우선, 수면 관리 앱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포켓몬 슬립의 핵심 콘텐츠이자 기능은 수면 계측입니다. 어플을 실행해, 좌측 하단의 '잠자기' 버튼을 눌러 실행해 주기만 하면 되는데요. 이렇게 수면 계측 중인 상태로 스마트폰을 자신이 눕는 침상에 함께 두고 잔 뒤, 일어나서 계측 종료를 실행하면 그날의 수면 분석 내용을 그래프로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 워치 등 다른 기기가 필요치 않고, 움직임과 소리(코골이 등) 감지만을 이용해 수면의 질을 분석해 주는 점은 칭찬할만합니다. 저는 갤럭시 워치가 있어, 잘 때 삼성 헬스 앱에서 자동으로 수면 분석을 해 주는데요. 두 어플로 동일 수면을 동시에 분석 시, 실제로 내용 측면에서 굉장히 유사해 신뢰도 역시 높은 편으로 보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포켓몬 슬립이 음성 녹음 기능을 사용해, 삼성 헬스에서는 코골이 감지가 불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개선이 필요한 점도 분명 있습니다. 우선 분석 내용이 다른 수면 보조 어플들에 비해 단조로운 편입니다. 단적으로 삼성 헬스의 경우 수면 단계를 4개로 분류하는 데 비해, 포켓몬 슬립에서는 3개로만 나누어 놓았습니다. 때문에 계측 내용이 더 단순화되어 있고, 세세한 분석은 불가능하죠. 일정 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을 경우 계측이 자동으로 종료되는데, 침상 외 다른 곳에 실수로 휴대폰을 올려놓고 잘 경우, 수면 계측이 아예 없던 일이 되어 하룻밤을 날려 먹는 일이 생기는 것도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침상에 제대로 올려놓은 경우에도 버그성으로 비슷하게 중단된 것이 한두 번 정도 있고요. 어쨌거나 버그 수정이나 기능 조정 등 앱 업데이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수면 계측 기능도 이후에 좀 더 멀끔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당장 삼성 헬스도 예전엔 수면 계측이 지금보다는 훨씬 단순했던 게, 지금까지 와서 굉장히 많이 발전했던 걸 생각해 본다면, 포켓몬 슬립도 발전의 여지는 충분합니다.
무엇보다도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만들어주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역할의 측면에선, 포켓몬 슬립은 이미 합격입니다. 기능적으론 조금 아쉽지만, 어차피 수면 어플이 의료 행위를 대신할 수도 없고, 대부분의 비의료인들이 수면 내용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있어도 아무것도 개선할 수 없으니까요. 수면의 질이 지나치게 낮거나, 불면증 등에 시달린다면 의료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겠죠. 의사와 상담할 때 "수면 계측 앱을 사용해 보았는데, 얕은 잠을 자는 시간이 길게 나옵니다" 정도면 사실 충분하니까요. 잠자기 약속 설정한 시간 전 앱 푸시가 들어와 잠들 시간을 상기시켜 주고, 최근 30일 이상의 실질 수면 시간 및 분석 내용을 수면 데이터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수면 습관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것에는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2. 분명히 재미있는 게임도 맞습니다.
포켓몬 슬립은 정말 쉽고 간단합니다. 최대 5마리까지의 도우미 포켓몬 팀을 설정해, 이들이 수집해 오는 나무열매 및 식재료를 통해 매 주간 바뀌는 섬의 잠만보를 성장시켜 가면 되는 방치형 게임인데요. 컨트롤도, 뇌지컬도 없이 그냥 원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세팅해 주고 몇 번 눌러주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계산적으로 플레이할 건덕지가 충분히 있기는 합니다만, 경쟁도 없는 수면 계측 게임에서 '굳이?'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마찬가지로 인앱 결제 요소가 있음에도, 플레이 자체엔 영향이 크지 않고 구매 없이도 100% 즐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그냥 원하는 대로 선택하면 됩니다. 피로도가 굉장히 낮은, 너무나도 귀여운 포켓몬 관상용 분재 게임이라는 점이 굉장한 플러스 요인입니다.
특히, 포켓몬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도감작 하는 즐거움'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본가, 외전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타이틀에서 다분한 경향이죠. 게임에서 무언가를 수집해 리스트를 완성하는 것이 주는 뿌듯함이 핵심으로, 포켓몬 슬립 역시 이런 IP적인 수집형 게임의 특징을 다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 수집 가능한 요소들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더보기)와 같습니다.
포켓몬 슬립의 수집 요소 (23.11.01 기준)
- 포켓몬
- 포켓몬의 프렌즈 포인트를 높혀 동료로 영입할 수 있음. 현재 112종으로, 지속적으로 추가 예정. 일부 이벤트 전용의 한정 배리에이션 有. (Ex. 할로윈 피카츄)
- 포켓몬의 잠자는 모습을 스냅 사진 형식으로 도감에 수집. 한 포켓몬당 3~4종 정도의 자는 모습을 가지고 있음.
- 꾸벅꾸벅 타입 : 145종
- 새근새근 타입 : 162종
- 쿨쿨 타입 : 137종
- 포켓몬의 프렌즈 포인트를 높혀 동료로 영입할 수 있음. 현재 112종으로, 지속적으로 추가 예정. 일부 이벤트 전용의 한정 배리에이션 有. (Ex. 할로윈 피카츄)
- 음식류
- 나무열매 : 18종, 획득 시 잠만보가 자동으로 바로 먹고 에너지를 획득.
- 식재료 : 15종,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
- 요리 : 48종, 매일 정해진 시간대별로 3회 만들 수 있는 제작 유형. 잠만보가 먹고 다량의 에너지를 획득.
- 기타
- 수면 Tips : 52종
음식류의 경우, 동료가 된 포켓몬을 다양하게 팀 편성 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경향이 있고요. 수면 Tips의 경우, 요리 시 알아서 랜덤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플레이 기간이 길어지면 알아서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수집의 핵심은 포켓몬 잠자는 모습과 동료 만들기인데요. 포켓몬 GO처럼 일일이 찾아 돌아다닐 필요 없이, 오히려 내 수면 유형 및 리서치 중인 섬에 따라 포켓몬이 찾아와 주는 구조인 만큼 부담감은 낮은 편이지만, 그만큼 포켓몬 수집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하루에 만날 수 있는 포켓몬의 숫자가 매우 제한적인데다 그나마도 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빠른 진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강제성을 단점으로 들 수 있겠네요. 인앱 결제를 하더라도 가성비가 좋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결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수면 계측 앱이자 서브 게임으로, 플레이에 조금 느긋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개선해 준다면 충분한 가능성
당장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 스토어만 보아도 포켓몬 슬립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토로하는 리뷰를 많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저런 내용으로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두 달 이상 사용해 본 결과, 개인적으론 수면 보조 어플로서, 그리고 모바일 수집형 게임으로서 핵심은 잘 갖추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꽤 고무적인데요. 실제로 각종 버그 수정, 유저 피드백에 기반한 시스템 개선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콘텐츠적으로도 계속해서 업데이트가 예고되어 있으며, 굿 슬립 데이나 핼로윈 등 정기/시즌 이벤트도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게임 운영이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색다른 수면 관리 앱을 원하시거나, 포켓몬 IP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포켓몬 슬립을 한 번쯤 이용해 보십사 추천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