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어제 선제 공개된 워크래프트 럼블을 필두로, 블리즈컨 2023이 시작됐죠. 작년이나 20년도엔 행사 자체가 없었고, 21년도엔 코로나19의 여파로 온라인 스트리밍만 진행했기에, 현장 이벤트로는 4년 만에 개최가 되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행사가 아닐까 하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수와 회사 대내외 사정으로 인한 리더십 교체, 그리고 알 수 없는 게임들의 방향성과 연이은 운영 실책으로 팬들에게는 불안 불안했던 블리자드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이번 블리즈컨은 전화위복의 자리였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최소한 18년도의 디아블로 이모탈 발표 당시처럼, 부정적인 해프닝으로 삽질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했다는 게 사실 마음속 우선순위가 더 높았습니다.
팬들에게 가치를 증명하는 축제, 블리즈컨
블리자드 게임 팬들에게 블리즈컨이 가지는 의미는 엄청납니다. 기본적으로 블리자드보다 규모가 큰 거대 게임 그룹들도 자체 시리즈만을 가지고 컨벤션을 열지 않습니다. E3나 게임스컴 등 대형 게임쇼에 부스를 내고 참가하죠.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코믹스나 영화 등 다른 콘텐츠의 공룡 기업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는 블리자드가 그래도 어느 정도 잘해왔다는 사실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큰 팬덤의 엄청난 충성도 덕분에 가능한 일이죠. 현재 블리즈컨의 경우 애너하임 오프라인 참가에만 티켓 구매가 요구되지만, 당장 19년도까진 생중계 시청을 위해서도 가상 입장권을 6만 원 가까운 가격에 구매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포함해, 이를 구매해서 새벽잠을 줄여가며 스트리밍을 관람한 팬들이 한 바가지죠.
블리즈컨을 꼬박 챙겨 보면서 기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블리자드 게임들에 대한 깜짝 발표를 매년 블리즈컨에서 진행하는 것이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뉴스를 인터넷 웹진 보도자료로 접하게 되는 국내 게임사들과는 대비되는 모양새이죠. 물론 게임 토너먼트나 코스튬 행사 등도 즐겁습니다만, 아무래도 대규모 업데이트나 확장팩, 그리고 무엇보다 신규 프로젝트의 발표가 가장 큰 이벤트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때문에 해마다 블리즈컨에 대한 평판은 게임 소식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 나는 것이 보통인데요. 블리즈컨 2023의 경우 팬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각종 업데이트는 반갑지만... 뜸한 신작 소식
우선 굉장히 아쉬운 것은 신작 소식이 없다는 점인데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아예 확장팩을 3개 단위로 로드맵 보여주듯 공개하였고, 디아블로 4도 '증오의 그릇' 확장팩을, 하스스톤의 경우 이미 알려진 '황야의 땅 결투' 확장팩의 추가 정보를 제공하였지만, 정작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어 개인적으론 실망스러웠습니다. 블리자드에선 22년에도 미공개 생존 게임을 만들겠다며 구인을 했던 전력도 있는 만큼, 2년 넘게 지난 시점에 아무런 정보가 없어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듭니다.
새로운 게임의 공백을 마냥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블리자드 게임들의 노후화와 각 프랜차이즈 리타이어 가속화 현상 때문인데요. 이미 작년부터 스타크래프트는 스2를 마지막으로 시리즈 명맥이 끊겼고, 연속 확장팩이 예고되긴 했으나 와우 역시 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을 만큼 오래된 게임입니다. 전성기에 비해 유저 수도 꽤 줄었고, 이번 확장팩 3부작에서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몇 남지 않은 소재인 공허, 그리고 '마지막 티탄'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워크래프트 세계관에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될 확률이 높고요.
심지어 신작들도 점점 수명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업데이트 중단으로 풍비박산이 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뿐만 아니라, 오버워치 역시 2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인기가 꾸준한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죠. 경쟁형 게임의 몰락은 e스포츠에서 먼저 반응합니다. 히오스와 마찬가지로 오버워치 역시 프로팀들이 해체되고, 공식 리그가 종료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죠. 일단 오버워치는 업데이트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경험에 미루어 보자면 두 게임의 운명이 조만간 비슷해질 수도 있습니다. 디아블로 4의 경우, 생각보단 유저 숫자가 잘 받쳐 주고 있으나, 엔드게임 콘텐츠 부족으로 런칭 초 ~ 시즌 1까지는 꽤 큰 위기를 겪었고요. 워크래프트 럼블이 나왔다지만, 어디까지나 모바일 플랫폼의 서브 게임 포지션으로, 당장 하스스톤의 아성을 넘는 것도 힘들 겁니다. 아무리 대세라지만, 모바일 게임에 지금보다도 더 치중하게 된다면 민심 이반은 피할 수 없을 거고요.
우선 외양간부터 고치지만, 내년엔 꼭 신작 소식이 있었으면...
아직 블리즈컨 이튿날 행사가 남아 있지만, 일정표 확인 시 첫날과 비교해 대단히 새로운 정보를 공개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현재 블리자드에게는 강력한 한 방을 가진 (그리고 디아블로 시리즈가 아닌) 신작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이번 블리즈컨에 미루어 보았을 때, 당장은 기존 서비스 게임들의 재정비에 몰두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어둠땅'과 '용군단'을 거치며, 유저들과 소통 폭을 늘리고 피드백을 (과거에 비해서는 꽤) 적극적으로 수용해 반영한 와우가 근 몇 년간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생각해 본다면, 게이머 입장에서도 이런 전략이 꼭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또한 오버워치 2, 특히 디아블로 4의 경우 고칠 점이 산적해 있어 유저들이 많이 떠나간 상태로,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이를 개선하고 다시 게이머들에게 구애하여 또 한 번 부흥하는 것이 단순히 꿈만은 아닌 상황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매출이 나쁘지 않고, 이용자가 많은 게임들을 여럿 거느리고 장기간 서비스 중이니 만큼, 소 잃기 전에 외양간부터 착실히 유지·보수한다면 분명 반길만한 일인 것은 확실합니다. 정말 너무나도 아쉽지만, 블리자드가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잘 풀어내고, 내년에는 부디 엄청난 신작 소식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 주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