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6.5/10, 추천!
1997년 베트남 어느 교외 지역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아주 단순한 내용의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현지인의 시각으로 그려내지만 묘하게 잘 통하는 풋풋한 고등학생들의 첫사랑 감성과, 반대로 우리에겐 생소한 베트남의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향수의 감정을 아주 산뜻하고 즐겁게 느껴볼 수 있는 영화.
"남편 맞추기"는 빼 버린 담백한 '베트남판 응칠'
베트남에 진출한 CJ E&M에 의해 투자·배급된 영화이지만, 한국에서는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잠깐 얼굴만 비치고 갔던 '걸 프롬 예스터데이'(The Girl from Yesterday; Cô Gái Đến Từ Hôm Qua)는, 베트남에선 국민 소설가 중 한 명인 '응우옌 녓 안'(Nguyễn Nhật Ánh)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2017년 영화입니다. 아시다시피 CJ는 tvN에서 2010년대 초·중반에 80년대 ~ 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응답하라' 시리즈로 한참 노스탤지어 감성 공략이 성공해 재미를 본 전력이 있죠. 걸 프롬 예스터데이 역시 1997년의 어느 베트남 교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추억 여행과 같은 영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비슷한 제작 논리가 투입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 참고로 베트남이나 기타 일부 국가 넷플릭스에선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시청이 불가능합니다. 아마 베트남 영화는 비용 대비 시장성이 없어서 한국 넷플엔 잘 안 올라오는 것 같은데, 맨날 "다양성"이 어쩌고 하는 서비스가 이럴 때 보면 참 시장 논리에 철저한 지라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어쨌거나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 보자면, 원본 자체가 그리 길지 않은, 중편(中篇) 소설이라 불러야 할 법한 분량인 데다, 장르 자체가 고등학생 첫사랑물인지라 영화 내용은 배배 꼬아 놓은 이야기 없이 다분히 정직합니다. 1997년 베트남 어느 교외 지역의 고등학교 졸업반에서 가장 심각하게 유급 위기에 처한 "바보" 주인공 '트'(Thư)는,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한 전학생 '비엣 안'(Việt An)을 보곤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없는 재치를 쥐어짜 내는 동시에, 절친이자 나름 우등생인 "말라깽이" '하이'(Hải)의 책에서 배운 로맨스 조언과 버무려 있는 힘껏 구애에 열을 올리지만, 별다른 수확 없이 (친해지긴 합니다만 😂) 도도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비엣 안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면서 좌절하고 고민하는데요. 이 과정이 전체 내용의 60%는 족히 차지할 만큼, 아주 단순한 내용의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뻔한 줄거리에 유일하게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장치가 있다면, 바로 트의 첫사랑 '띠에우 리'(Tiểu Li)와의 추억 회상 아닐까 합니다. 현실에서의 사랑에 번번이 치이는 트는, 아직 초등학생 시절 옆집에 살았던 단짝 띠에우 리를 정말 거의 한 시도 잊지 못하는데요. 그게 사랑인 줄도 모를 만큼 어렸던 시절, 부모님 손에 이끌려 도시로 이사 나가게 되면서 기약 없이 떠나버리고 만 그녀가 야속하기만 하지만, 동시에 거의 무슨 일만 있으면 띠에우 리와 연관된 추억이 거의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올 만큼 그녀를 그리워하기도 하죠. 군것질 거리도 사다 바치고, 영화 표를 구해 와서 계속 같이 보러 가자고 하거나, 책만 보면 졸기 일수이면서도 독서에 관심 있는 척하며 대화를 유도하고, 그렇게 빌려 온 책에 자신의 주 특기를 살려 그녀의 예쁜 초상화를 몰래 그려다 주는 등 비엣 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트이지만, 자신의 사랑에 진전이 없어 속된 말로 "현타"가 올 때마다, 어린 날 자신을 조건 없이 좋아해 줬던 띠에우 리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며 향수에 잠기곤 합니다.
당혹스러울 만큼 돌직구 같은 정직함이 포인트인 하이틴 첫사랑 영화
이렇게 걸 프롬 예스터데이는, 과연 비엣 안에 대한 트의 짝사랑이 결실을 맺을 날이 올까를 궁금해하는 한 편,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인 띠에우 리와의 과거 회상을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핵심 관전 포인트인 작품이 아닐까 하는데요.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베트남의 30년 전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한 세팅은, 나이 든 관객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동시에 도시의 삶에 익숙한 젊은 관객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함을 주는 데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이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 무기이기도 했죠. 🤣) 전반적인 연출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열연 역시 돋보이는데요. 어린 시절의 풋풋함, 소소한 일상에서도 겪는 개인의 고뇌와 인물 간 갈등을 배우들이 훌륭하게 소화해 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아역 배우들에게 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어린 트나 띠에우 리를 보는 동안 인위적인 연기 톤을 찾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영화에서 과거 회상 신의 중요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이 정도의 몰입감이 가능하게 한 것은 이들의 열연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흔한 구성에 예측 가능한 전개를 하고 있는 영화이고, 그래서 대신 등장인물들의 심경과, 인물 간 관계를 통한 감정이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도 하고요. 약점 같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간에 하이틴 롬콤 타깃 관객층에겐 오히려 이렇게 진부하기까지 한 정직함이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할 수 없으리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보는 관객이 없고, 시저가 유인원들을 잘못 이끌어 멸종에 이끌게 할 것이라고 짐작하며 맷 리브스 감독의 '혹성탈출' 3부작을 보러 가는 관객이 없듯이, 바보스러운 주인공 트와, 그가 운명처럼 반한 비엣 안이 새드엔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단 하나의 키스신조차 없음에도 너무나 따뜻하고 가슴 아련한, 첫사랑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는 감상이 드는, 보고 나면 마치 추억처럼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