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6/10, 추천!
한중 스토리 공동개발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극한직업'의 베트남 리메이크작. 기존 한국 원작의 흥행 실패를 인식한 듯, 현지 제작진을 통해 시나리오부터 다시 만든, 베트남에 더 잘 어울리도록 환골탈태한 오락 영화.
모든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CJ는 베트남에서도 중·상류지 중심으로 CGV를 내고, 현지 영화에도 투자·배급에 (나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당연히 한국 영화를 베트남으로 배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손에 꼽는 실적을 낸 국산 영화 '극한직업'인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베트남에서는 현지 관객들에게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끌어내며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CJ에서는 다른 전략을 취하는데요. 바로 현지 제작진과 캐스팅을 데리고, 맞춤 시나리오로 베트남 리메이크를 만드는 것이었죠. 애초에 극한직업 자체가 2015년 '한중 스토리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독특한 이력의 영화고, 때문에 한국판과 별개로 중국에선 2018년 '비밀경찰: 랍스터 캅'(龙虾刑警)이란 이름을 달고 제작돼 개봉되기도 했던 만큼, 이미 같은 본판으로 2개국에서 활용했던 전례가 있어 이런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더군다나 CJ는 '수상한 그녀'라던가, '미녀는 괴로워', '써니' 등 정말 다양한 한국 영화를 베트남에서 현지 캐스트로 리메이크해 왔기에, 어떻게 보면 "매우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네요.
그리고 그 결과, 매우 쉬운 일은 22년 4월 개봉해 (상대적으로) 대박을 냈습니다. 아래 링크도 보도자료로 보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CJ 내부에서도 성공이라고 공언할 정도면 분명 없는 이야기를 한 건 아닐 테니까요.
콘텐츠 배급 시 로컬라이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매우 쉬운 일의 본판이 되는 극한직업은 한국에서 1,600만 대박 흥행을 했죠. 감독 이병헌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극한직업은 분명 잘 만든 영화이고, 아주 즐거운 코미디의 상업 영화이니, (이 정도까지 잘 될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어떻게 보면 개봉 이후엔 영화를 즐겨 본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했던 결과이기도 했죠. 하지만 한국에서 그렇게 엄청난 실적을 낸, 잘 만든 영화인 극한직업은 베트남에서는 아예 통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체로 호의적인 관객층이 상당수인 시장인 데다, 이미 본국에서는 재밌다고 소문이 다 난 뒤에 개봉(20년 말)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했죠. 단순히 표면만 보고 판단하면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선 베트남판 극한직업인 매우 쉬운 일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영화는 거의 동일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고, 그래서 작품성은 극한직업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입니다. 기승전결 내용 구도도 거진 같다고 보시면 되고요. 들입다 황당한 코미디부터 던지는 이병헌표 오락 영화의 특색은 매우 쉬운 일에서도 그대로 잘 살려 냈습니다. 대신 한국인 잠입 수사 경찰들이 익숙한 얼굴의 베트남 배우들로, 은퇴한 경찰과 (숨겨진 비밀을 가진) 동네 오합지졸들이 되었고, 대박이 난 치킨집은 대신 현지에서는 과장 좀 보태 두 집 걸러 한 군데 있을 만큼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숯불갈비 껌땀(Cơm tấm) 집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일 겁니다.
아마 할리우드, 일본 애니메이션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외산 콘텐츠를 생각하며, 큰 차이가 없는데 한국 극한직업은 안 되고 현지의 매우 쉬운 일은 되는 이유가 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K-pop 대세론에 휩쓸려서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단 현지에서도 SF, 슈퍼히어로, 기타 블록버스터급의 미국 상업 영화들은 친숙하고, 또 베트남 국내 영화와 포커스가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어 선호도가 높지만, 한국 영화는 인기는커녕 인지도 자체를 얻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또 현지 프로덕션과 비교해 크게 차별화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애매모호하다는 인상이 크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인물에 집중하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등의 장르가 많지만, 비슷한 구성의 베트남 영화들과 달리 문화적 괴리가 크다 보니 웃음 포인트도, 감동 포인트도 꽤 어긋나 있어서, 어지간한 매력도가 없으면 한국 영화를 보느니 그냥 국내 작품을 보는 게 낫겠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나 하고요. 이런 상황에 배급원인 CJ, 롯데의 공세로 한국 영화와 리메이크판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는 점도 현지 관객들에게는 피로감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해요. 단순히 판권이 있다고, 해외 실적 내기라는 목표에 매몰되어 대충 '될 것 같은' 한국산 영화를 양껏 날려 보는 것보다, 질적으로 옥석 가리기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실이 이러니 한국 극한직업 리메이크인 매우 쉬운 일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또 신기한 상황인데요. 개인적으론 결국 잘 짜인 시나리오의 저력을, 원만한 로컬라이제이션을 통해 최대 아웃풋으로 끌어낸 사례가 아닐까 해요. 요리로 비유하자면, 물론 재료의 맛과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일 테지만, 요리사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또 식사를 하는 손님의 의향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가 어렵겠죠. 이런 관점에서 매우 쉬운 일은, 한국에서 온 신선한 스토리를 현지 입맛에 맞게 잘 다듬고 맛을 내어 성공하게 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