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관심은 있었지만 꼬박 한 달을 넘게 미루어 뒀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병동')를 드디어 다 보았습니다. 제목과 소재만 슬쩍 보고도 '이 드라마 정말 우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인데요. 너무나 밝은 빛이 드는 파스텔톤 콘셉트 포토 이면에 숨겨져 있을 어두운 줄거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드라마를 정주행 하면서 예감이 확신으로 변했고요. 내용 면에서 충격이 큰 편이기에, 현재 마음의 병과 싸우고 계신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 낫고 보아도 늦지 않아요. 대신 건강하신 분들이 꼭 보셨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만한, 어쩌면 미래에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할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입니다.
'정신병동'은 지난 11월 3일 공개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시리즈입니다. 당연히 넷플릭스에서만 시청 가능하고요. 내용적인 면에서는 드라마화를 위해 적지 않은 수정이 있었기에, 만화를 먼저 보시고 접하신 분들께서는 익숙하지만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참고로 아래 내용에도 설명을 위해 불가피하게 설정 위주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텐츠 줄거리를 다 밝혀 버리는 단순 받아쓰기형 리뷰어들을 저부터가 좋아하지 않기에, 주요 포인트가 되는 내용이라던가, 결말과 같은 민감한 정보는 배제하였지만 어느 정도 감안이 필요합니다.
개인평 요약 : 8.5/10, 매우 추천!
내과에서 정신의학과로 옮기게 된 3년 차 간호사 정다은이 정신병동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겪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통해 변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의학 드라마.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정신질환이라는 소재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에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정신병동의 사람 사는 이야기
드라마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미지의 영역인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병동을 주 무대로 합니다. 때문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들은 입원해 있는 환자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데요. 스크린 속 병동의 환자들은 얼핏 보면 우리 사회에서 그려지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입니다. 너무나 다양한 경위로 앓게 된 조현병, 양극성 장애, 불안 장애 등의 꼬리표처럼 덧붙여지는 병명에 걸맞은 각종 증세를 거침없이 드러내는데요. 실제 병환이 있는 것만 같은 배우들의 감쪽같은 열연 덕에, 이런 모습에 익숙지 않은 비의료인의 시각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해요. 환각, 망상 등 대부분은 겪어 보지 못하는 증상을, 환자의 시선에서 CG를 통해 상세하게 부연 설명하고 있는 점도 정신질환을 간접 체험하는 것처럼 리얼리티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한편 이들의 반대 극단에 서 있는 "정상인"들 역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 가는데요. 우선 주인공 정다은부터 문제적 인간입니다. 내과에서 내리 3년을 일했지만 동료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학 병원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지나치지 못해 귀담아듣고, 심적으로 교류하려고 하는 바람에 업무 효율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도 다 들리게 욕을 하는 것은 둘째 치고, 본인도 이런 상황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나 스스로의 힘만으로 쉬이 개선하지 못하는데요. 결국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유로 내과 수쌤(수간호사의 약칭)에게서 공석이 있는 정신과로의 이동을 제의받고, 이를 승낙하지만 정작 정신병동에서도 그녀의 행동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킵니다. 안 그래도 다사다난한 정신과 입원 병동에서, 자신 때문에 의료진과 환자들 모두 피해를 본다는 자책감으로 그녀의 속은 문드러져만 갑니다.
또한 그녀 주변의 사람들 역시 각자의 문제로 만만치 않게 마음 고생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가족, 지인, 동료, 타인과의 어긋난 관계에서 얻은 상처들로 고통받고, 이 때문에 종종 새로운 교류에서도 다시 스스로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말죠. 특히 병동에서 겪는 각종 어려움, 그리고 병원 밖에서 이어지는 삶의 중압감은 의료인들의 정신 건강을 끊임없이 정상에서 비정상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임계점에 달하면서 실제로 다른 이의 돌봄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우연한 계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어 다행히 하루 더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라는 통념에 던지는 의문
'정신병동'에서는 각 캐릭터의 삶과 정신 건강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액팅아웃"을 리얼리즘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마냥 불가해하고 두려운 존재들로만 그려내지는 않고요. 왜 마음의 병을 얻게 되었는지 이들의 과거와 현실을 조명하면서 그 과정을 설명해 주고,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의료인들의 입을 빌려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로 가져옵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관객은 정신병 환자라는 타자화된 타이틀 뒤에 숨겨진 이들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게 되고,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한편 그렇게 이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시청자의 시선은 자연스레 '정상의 범주'에 속한 인물들로 넘어가게 되는데요. 서로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 겪어 온 과거 배경이나 당장 처해 있는 현실에 의해 고뇌하고,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론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괴롭히기도 하는 "정상인"들을 보다 보면, 묘하게도 먼저 보았던 정신 질환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장소가 다르고, 동기와 목적이 다르고, 발현하는 행위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면, 극 중 이들의 모습은 진단명만 없다 뿐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어쩔 때는 환자보다도 더욱 아픈 것만 같이 그려지기도 하고, 무언가 저지른 지 한참 뒤에야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지하고 시인하게 되기도 하죠. 때론 실제로 정신 질환 진단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아내며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넘나드는데요. 각 인물들의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 가거나, 반대로 치유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내면서, 우리에게 일종의 정신적인 스펙트럼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정신병동'을 보다 보면, 어떤 사람이 정상이고 어떤 사람이 비정상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경험을 하실 텐데요. 정신 질환자나 지적 장애인의 낮은 범죄율에도 불구하고, 몰이해와 막연한 포비아를 토대로 일부 이슈화 되는 사건에 집중하며 사회적 안전망의 허술함이 아닌 이들 본인을 탓하며, 영구적으로 사회 밖으로 제외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이나, 한정된 식견과 부족한 지식을 토대로, 고찰 없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혐오의 메시지를 온 사방에 흩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과연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직 진단받은 바 없고, 스스로 불편하거나 모자란 점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공연히 자신과 타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인간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반대로 입원 병동에서 충실히 치료를 받고 의료진의 확인을 받아 퇴원했지만, 꾸준히 내원하며 처방 약을 복용하며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정신 병력이 있는 이를 비정상인이라고 분류해야 할까요? '정신병동'에서는 이런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어느 한 점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 상태를 구별 지으려 하는 시도, 그 기준선을 정하고 한 인간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편견에 기반한 일인지 가르쳐 주고 있지 않나 합니다.
결국 아침은 온다는 희망의 메시지
'정신병동'에서는 정신병 환자의 사이코틱한 기질 따위에 매몰되는 대신, 이들을 아프게 만들고, 또 소외되도록 방치하는 사회의 작태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부터 깨닫고, 변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명확히 하고 있고요. 우리 모두는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믿고, 또 스스로를 정상의 궤도 안에 포함시키고자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게 되죠. 그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와 슬픔, 아픔이 누적돼 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는데요. 작중 그려지는 의료인들은 이런 마음의 병을 감기나 치질처럼, 누구나 걸려서 고생할 수 있는 신체 질환과 같은 선상에서 다룹니다. 당장 손가락 중 하나를 잃거나, 코로나19에 걸려 병상에 눕는다고 비정상인이 되지 않는 것처럼, 정신 질환 역시 꾸준한 관리를 통해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이 과정에서 가족 등 주변의 지지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는 큰 교훈도 함께 합니다.
결국 '정신병동'에서는 당장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정말 나아지는 것인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반드시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제목에서부터 이를 숨기고자 하기는 커녕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고, 이런 직선적인 면이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죠.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지만, 참고 기다린다면 어쨌든 해는 뜬다는 다분히 식상하고 뻔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낫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강하다면, 분명 다시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노래하는 드라마가 아닐까 해요. 행복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매일 더 나은 내가 되고자 노력하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힐링 드라마"라는 카테고리로 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