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과장을 좀 보태야겠지만, 게임 시장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근래까지 굉장히 성공적이었던 프랜차이즈가, 당장 내일부터 수십만 개의 부정적인 리뷰와 함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는 일도 꽤 종종 있는 업계죠. 1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등장과 함께 엄청난 숫자의 팬들을 양성해 낸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가, 2편에서 엄청난 혹평을 받으며 사실상 팬덤이 와해된 것이 먼저 예시로 떠오릅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각기 다른 다양한 타깃 유저층의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기호를 신속하게 맞추어야 하고요. 한두 달 전 스팀에서 얼리액세스를 종료하고 정식 출시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발더스 게이트 3(Baldur's Gate 3)을 둘러싸고, 일부 패닉한 게임 개발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논쟁을 떠올려 본다면, 현대의 게임 개발의 불확실성이 개발자들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최소한의 판단은 가능합니다.
물론 사례의 '발더스 게이트 3'처럼 불확실성을 깨면서 시장을 지배해 온 게임들은 종종 있어왔습니다. 보통 해당 게임들이 플랫폼/장르를 리드하는 경향도 꽤 컸고요. 십수 년 간 PC MMORPG 장르를 거의 군림하다시피 했던 와우(World of Warcraft)나, MOBA 장르에서 그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둔 LoL(League of Legends) 같은 사례도 있고, FPS/TPS에서는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배틀그라운드(PUBG)처럼 순차적으로 시장 지배력을 뽐내 온 경우도 있습니다. 승자가 독식하는 경향이 강한 게임 시장에서, 이런 히트 타이틀들은 경쟁작들이 고전하는 동안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전장의 지배자, 캔디 크러시 사가!
이런 사실상의 시장 독점 타이틀들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게임이 있는데요. 바로 킹(King)의 캔디 크러시 사가(Candy Crush Saga)입니다. 애플에서 처음 스마트폰을 내놓은 이래, 현재까지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거대한 성공을 이룩한 게임 중 하나인데요. 장르, 플랫폼을 불문하고 그 규모 면에서 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게임 타이틀이 몇 되지 않을 지경이고, iOS와 Android 버전 출시 기준으로도 십수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치-3 장르를 포함한 모바일 게임 최정상권에 머물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금번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에 있어 밝혀진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모바일 플랫폼에서의 게이밍 영향력 확장인데요. 콜 오브 듀티: 워존(COD: Warzone Mobile)이나 하스스톤(Hearthstone) 등 액티비전이나 블리자드 진영에서의 성공작도 물론 있습니다만, 이들 프랜차이즈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모바일 게임 전문 개발사인 킹의 게임들, 특히나 원로급이면서도 아직까지도 정상에 있는 캔디 크러시 사가, 그리고 이런 타이틀을 만들어 내고 운영해 온 노하우의 흡수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근 몇 년간 꽤 힘든 시기를 보내왔던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실적을 견인해 왔던 것이 그룹 내 집계되어 온 킹의 매출이기도 하고요.
매치 3 퍼즐이라는 장르 특성 상의 단순함, 그리고 출시부터 장장 12년이 되어 가는 연식 때문에 캔디 크러시 사가를 진지하게 평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시장 지배력을 본다면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죠. 언뜻 보면 단순하고, 경쟁작들과 대비해 큰 차별점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게임이 이렇게까지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까요? 아래에서는 GDC에서 개발진이나 C레벨 임원, 아니면 사업, 마케팅 담당자가 할 법한 지루한 자랑 같은 건 잠시 제치고, 실제 확인 가능한 내용만 추려서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캔디 크러시 사가,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가게 됐을까요?
1. 업계에선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어마무시한 규모의 유저 풀
지금은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훨씬 익숙하지만, 킹이 실질적으로 시장에 제대로 뛰어들었던 것은 페이스북 인스턴트 게임 시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시기 캔디 크러시 사가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인게임 소셜 기능을 통해, 당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며 독점적 지위에 있었던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을 제대로 활용하며 어마어마한 인지도 및 인기를 얻게 됩니다. 최근엔 확실히 덜한 경향이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게임들은 카카오와 제휴하여, 카카오톡을 이용한 소셜 기능을 탑재해 왔던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죠.
안 해본 사람이 거의 없는 게임인 만큼, 캔디 크러시 사가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점은 아실 텐데요. 모바일 게임 시장이 현재와 같이 성장하기 전, 매치-3를 포함한 퍼즐 장르 전체적으로 비슷한 시도를 하는 게임은 많았고, 일부는 카피캣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몇몇 캔디 크러시 시리즈와 비교해도 크게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괜찮은 게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퀄리티와 무관하게 이런 경쟁작들은 모두 캔디 크러시 사가의 아성을 넘지 못했고, 한국의 애니팡과 같이 지역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아예 서비스 종료의 수순을 밟게 되었죠. 당장 킹의 자사 게임들끼리만 비교하더라도, 캔디 크러시 사가를 이기는 게임이 아예 없어 조금 불공평한 비교이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초 장수 게임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여러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를 진행하며 획득한 어마무시한 유저 베이스는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캔디 크러시 사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플레이어를 보유한 게임 중 하나이고, 게임을 해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유명세는 너무나 대단해서 비디오 게임을 아예 하지 않는 이들도 이름은 알 정도이니, 다른 게임들과 비교하자면 모객은 엄청나게 쉬운 상황이고요. 대형 게임사들이 한 해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는 돈의 규모를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의 인지도는 게임 타이틀로서는 정말 축복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업계에서 게임 운영에 가장 예의주시 하는 것 중 하나가 복귀 유저 전환 및 리텐션 퍼센티지라는 사실은 이제 유저들도 알 정도로 익숙한 사실인데요. 그저 재설치 후 계정 연동을 통해 이전 기록을 불러오기만 하면 접기 직전부터 편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의 태생 상, 복귀자 관련 지표는 좋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대체재가 넘치는 것이 오늘날의 게임 시장이지만, 업계 선도자로서 먼저 구축한 우월한 규모의 유저 풀이야말로 신작 게임들이 추월하기 어려운, 말 그대로 넘사벽 요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 악랄한 난이도의 레벨, 그 사이 미묘하게 투입되는 P2W 메커니즘
캔디 크러시 시리즈를 하며 종종 놀라운 것은, 첫인상과 다르게 게임이 엄청나게 경쟁적이라는 점인데요. 당장 캔디 크러시 사가가 처음 출시된 이후, 당시 유저들이야 대부분 실제 친구인 이들과 레벨 진척도를 두고 겨뤘을 테지만, 현재 그런 식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소셜 기능이 주는 피로도는 엄청나서 때때로 유저 반발도 컸고, 이 때문에 기능 자체가 축소 적용되는 것이 트렌드이기도 하고요. 오늘날 이런 요소들 대신 캔디 크러시 사가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끊임없이 제공되는 이벤트입니다. 게임 내 시즌의 2/3 이상, 그리고 이에 더해 중간중간 난입하는 깜짝 이벤트 상당수는 토너먼트나 배틀 로열 포맷으로, 1등이 하위 등수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말 그대로 승자 독식 구조입니다.
레벨 진척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게임을 오래 붙잡고 하기가 어렵다면, 이벤트를 전반적으로 무시해 가며 플레이해도 좋은 게임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충실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각종 이벤트에서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골드 바(Gold Bars, 인게임의 현금성 화폐)나 각종 스페셜 캔디, 부스터 등 특수 아이템류의 수량을 고려해 봤을 때, 게임을 지속적으로 플레이하고 있다면 이벤트를 무시하기 어려운 시점이 분명히 옵니다.
물론 이벤트에서 1등을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이벤트들은, 각각 서로 다른 미션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기간 내 얼마나 많은 레벨을 클리어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갈려버립니다. 그래서 다른 게임들 못지않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며 플레이할수록 우승하기가 쉬워지고요. 다만 문제는, 극초반 이후 백~천 단위의 레벨을 지나면서 레벨 디자인 난이도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상승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유저들이 게임을 접거나, 아니면 과금을 통해 뚫고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가장 궁극적인 포인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캔디 크러시 사가의 엄청난 성공에 가장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요소라고 판단합니다.
주관적 의견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간단히 제 게임 진척도를 통해 예시를 들어보자면요. 저는 얼마 전 재설치를 통해 최근까지도 캔디 크러시 사가를 즐겨왔고, 인게임 연승 이벤트("챔피언 레이스") 기준으로는 100연승 넘게 유지하며 진지하게 플레이해 왔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해당 이벤트로만 4,500개가 넘는 골드 바를 획득할 수 있었고, 기본 교환비가 1달러 : 15개 임을 감안했을 때 300달러가 넘는 수량인 만큼 절대 적은 양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이벤트가 결국은 모두 시간당 레벨 클리어율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획득한 보상 수량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레벨은 계속해서 등장했고, 클리어 과정에서 계정은 항상 가난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벤트가 뜸하거나 한 끗 차이로 1등을 하지 못해 보상량이 충분하지 못할 때면, 적게는 몇천 원에서 만원~이만 원가량씩도 꾸준히 과금하며 패키지를 구매했습니다.
물론 저와 같이 경쟁적으로 이벤트에 참가해 1등 상품을 노리는 방식으로 게임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때때로 너무 어려운 레벨이 등장하는 경우, 추가 아이템 없이 플레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사용하더라도 운이 나빠 클리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에,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아이템을 노리지 않고는 어느 순간부터 발목이 잡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한 레벨을 두고 2~3일 동안 전전긍긍하는 경험도 가능하고요. 저 역시 이런 경험 때문에 더 경쟁적인 스타일로 임했고, 지쳐서 관두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방식으로 레벨을 진행했습니다. 언뜻 보면 이탈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게임에 애정이 있다면 저처럼 과금을 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겠죠. 특히 1달러~5달러 선의 저렴한 패키지 상품으로 유명한 캔디 크러시 시리즈인 만큼, 구매 시 심리적 허들이 낮기도 하고요. 뽑기류 과금을 통해 일부의 충성 고객층 중심으로 많은 구매를 노리는 국내 모바일 MMORPG나 수집형 RPG와 비교해 본다면 정반대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십 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진행되는 사후관리
앞서 잠깐 언급했듯, 캔디 크러시 사가는 장장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운영되었지만, 업데이트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온라인 게임들과 비교해도 꽤 경이로운 수준인데요. 거의 매주 수요일에 새로운 에피소드와 레벨이 업데이트되고, 이런 꾸준함 덕택에 2023년 현재까지 14,000개가 넘는 레벨을 인게임에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 레벨에 3분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실패하여 하트(행동력)를 잃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게임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700시간이 넘는 기간이 요구되며, 하루에 5개 레벨을 고정적으로 클리어한다 쳐도, 무려 2,800일이나 걸리는 대장정이 펼쳐집니다. 물론 이를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해서 추가될 거고요. 이외에도 그래픽 개선이나 버그 수정 역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어, 킹에서 캔디 크러시 사가를 아직까지도 진지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띕니다.
요즘의 게이머들에게 온라인 게임에 있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할지 설문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유저에 대한 개발진의 대우가 느껴지는 운영"을 꼽지 않을까 합니다. 시장이 오늘날처럼 성장하지 않았던 과거의 경우에는, 대형 타이틀의 운영에서조차도 이런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대체재인 경쟁작도 많지 않았고, 유저 커뮤니티도 근래처럼 자유롭고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개발자가 유저 적대적인 스탠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용자 의견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기묘한 밸런스나 콘텐츠 패치 등으로 현재까지도 꾸준히 욕을 먹고 있지만, 단편적인 예시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타크래프트~워크래프트 시절 블리자드와 오늘날의 블리자드 분위기만 보아도, 유저 동향에 대한 대응의 온도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게임 시장이 성숙함에 따라 유저 피드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게임 세계관과 프랜차이즈에 가장 충성도가 높은 고객조차도, 개발사가 약속했던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게임 팬덤입니다. 구매를 고려하는 잠재적 고객 역시 게임 커뮤니티 동향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고요. 전반적으로 게이머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말 오랜 기간 킹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꾸준한 사후관리를 통해 신뢰를 쌓아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