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오늘(11.13) 입법 예고되었는데요. 게이머들, 특히 국내 게임사나 중국, 일본발 게임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박수를 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세부 내용을 살펴보니, 솔직히 말해 '이걸로 실제 게임 운영이 많이 개선이 될까?' 싶었던 포인트가 꽤 많았습니다. 이번 글은 그런 내용들을 좀 체크해 볼까 해요.
메이저 게임사들은 이미 상세하게 확률 공개 하고 있는데요.
상당수 기사들을 보면,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게임사들에서 확률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려지는데요. 사실상 "겜안분" (게임 안 하는 분탕) 그 자체와 같은 식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확률이 공개되지 않아 문제다, 라는 의견은 포인트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확률 아이템의 유형을 3개로 나눠 정리하고 컴플리트 가챠도 포함시킨다던가, 인게임은 물론이고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도 안내를 강제한다던가 하는 시행령 내용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뽑기 등 확률 상품에 대한 법안 관련 논의는 2020년대 이후 꾸준히 있어 왔고, 자율 규제에 의해 한국 서비스를 하고 있는 국내외 게임사들은 이미 이에 대비가 완료된 상태예요. 대부분의 업체들이 인게임 및 공식 웹사이트·커뮤니티 공지 등에 이미 과금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승리 선언에 취해 있을 시간에 유관 부처든, 언론이든 게임들 실황을 더 제대로 파악했으면 싶어요.
입법·행정 나으리들, 변화가 너무 느립니다.
의무가 아닌 권고 상황에서도 대부분 게임사들이 확률 공개에 기민하게 대응했던 이유는, 해당 문제가 유저층 부정 동향 발생에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율 규제 선에서도, 확률 공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요즘 여론 생기는 패턴을 보면 애초에 사업 자체가 어렵습니다.
물론 법제로 의무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고, 중국 등 일부 외산 게임들이 확률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케이스가 종종 있기 때문에 필요한 조치인 것도 맞습니다만, 대부분의 결제가 일어나는 인기 게임들은 애초에 해당 내용의 적용으로 개선되는 점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선 주요 게임사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에겐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겁니다.
근래 확률 공개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점은 보통 안내한 확률이 실제 인게임에서 아이템의 확률이 다를 때 발생합니다. 이는 이번 시행령으로 개선할 수 없는 내용인데요. 게이머들은 국가적 예방 차원에서 확률 콘텐츠의 감시와 계도, 위반 시 처벌의 강화 같은 내용을 더 기다렸을 겁니다. 당선인 시절부터 게임물 확률 규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벌써 반절도 넘게 지난 상황에서, 차관 브리핑말마따나 단지 논의 및 규제의 시작을 위한 전제가 되는 기본 사항을 지금에야 입법예고 한다는 것이 그리 고무적이진 않네요. 심지어 그나마도 24년 3월부터 적용되니,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습니다.
정작 외국 게임들의 계도는 어렵습니다.
이에 더해 현재는 해외 게임의 경우 국내에 위치한 서비스 주체가 없으면 확률 공개를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자율 규제를 잘 지키지 않는 게임사 상당수가 외국 게임사들임을 감안했을 때,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포인트이죠. 제가 반쪽짜리 시행령이라고 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국회에서 아직 논의 중인 해외 게임사들의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화가 통과되어 실제로 시행되기 전까지는 사실상 법망 바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법제화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국회의원 선생님들 일 어떻게 하시는지 대충 다 아시잖아요?
24인의 모니터링단 활동은 굉장히 제한적일 겁니다.
또한 이번 개정안 브리핑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모니터링단을 두어, 실시간으로 확률 정보 공개 내용을 감시·감독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확률 공개를 했나 안 했나 확인하는, 진짜 수박 겉핥기 정도 활동이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확률 공개 여부 자체보다는 그 공개 내용과 실제 인게임 확률이 동일한지가 훨씬 큰 문제라는 점에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요.
프로젝트 규모나, 게임사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겠지만, 보통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서비스하는 게임 하나에는 QA가 적어도 서너 명, 많으면 10~20인 단위로도 붙습니다. 이런 인원 중 확률 담당자 다수가 보통 1주~2주는 꼬박 잡고 검증에 들어가는데요. 막말로 한 개 게임사 1~2개 QA 인원 수준으로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 전체를 모니터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할 수가 없죠. 아마 활동의 대부분이 '표를 포함한 텍스트로 확률 공개를 하고 있는지' 정도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겁니다. 가짜 확률이 의심될 경우 특별 조사에 들어간다는데 과연 얼마나 철저히 뜯어볼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결국 결제는 선택의 영역, 법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장·차관 코멘트에서 느껴지는, 게이머들을 이끌어 줘야 할 무지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고자세도 굉장히 불쾌합니다. 정작 게임 생태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이들이, 내용적으로도 이제 와서 고작 이 정도를 준비해와 놓고 "게임 이용자들의 권익을 찾아 주겠다"는둥 많은 일을 해낸 것처럼 겉치레하는 것도 우습고, 한낱 효과도 미미한 개정안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도 굉장히 계몽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어쨌거나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번 시행령은 실효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하죠. 추가적인 규제를 입법화하고 시행하기 위한 전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정작 법제를 다루는 입법·행정부의 게임물에 대한 구세대적 인식 때문에 추가되는 법이 실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개선할지, 제때 나오기는 할지도 미지수입니다.
때문에 무능한 어르신들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보다, 결국 유저 스스로가 자신의 결제 패턴을 확인해 손해를 방지할 필요가 있어요. 게임은 결국 유흥을 위한 소비 콘텐츠이고, 필수재가 아닌 만큼 이용 및 구매가 100% 본인의 선택에 좌지우지됩니다. 이런 점은 확률이 더 철저히 검증돼 공개되어도 변하는 게 없죠. 오히려 이상한 추가 법령이 생겨서, 게임 자체가 악마화 될 경우 더욱 불행해지는 건 게이머들이기도 하고요. 구매의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본인이 자신의 구매력에 맞는 지출을 하고 있는지, 상품 구매 시 이게 꼭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