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7/10, 추천!
영국식 실없는 농담(banter)의 정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필로미나 컹크의 개그로 지루할 틈이 없어요.
필로미나 컹크는 누구인가?
필로미나 컹크는 영국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다이앤 모건의 방송용 콘셉트 캐릭터인데요. 국내에서 유명한 다나카, 마미손 같은 페르소나를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이앤 모건 본인도 원래 웃긴 인물이지만, 필로미나 컹크라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특유의 사실 왜곡과 허풍, 당찬 바보스러움이 압권인데요. 영국 및 영어권에서는 꽤 인기 있는 캐릭터로, 비슷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셰익스피어(Cunk on Shakespeare), 크리스마스(Cunk on Christmas), 영국(Cunk on Britain) 등의 주제들을 다룬 작품들이 이미 있고, 다른 프로그램에도 이 캐릭터로 자주 등장합니다.
작정하고 웃기기 위해 만들어진 코미디 시리즈
영국의 코미디를 보다 보면, 어느 정도 다른 나라들과 다른 미묘한 특색이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요. "사실이기 때문에 웃긴 것(It's funny because it's true)"의 범주를 넘어선 풍자와 희화화, 때론 가감 없이 내비치는 젠체와 시니컬함, 종종 바보스러움과 함께 엮이는 뻔뻔하다 못해 황당한 추태 같은 것이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순한 맛으로는 우리에게 미스터 빈이라는 또 다른 코미디 캐릭터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 아니면 IT Crowd 같은 드라마도 있고요. 스탠드업 쇼에서는 날이 서 있고 바보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나 TV 프로그램에서는 범인이나 백치 등의 캐릭터들로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드는 리키 저베이스 같은 케이스도 있는데요. 각자 개성이 있는 코미디 캐릭터들이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 분명 영국 유머가 전달하는 독특한 느낌이 있죠. 이번 글의 필로미나 컹크라는 캐릭터와,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Cunk on Earth)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필로미나 컹크가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
컹크의 색다른 지구 이야기는 양식은 갖추고 있을지언정 정통 다큐멘터리가 아닙니다. 일명 모큐멘터리(mocumentary)로 불리는, 허구성을 섞은 프로그램인데요. 다만 지구 이야기에서는 완전한 허구의 내용을 사실처럼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다큐멘터리에 비해 전하는 정보가 새롭지는 않고, 간혹 틀린 내용도 있지만 (ex. 금속활자인쇄술의 최초가 독일 구텐베르크가 아니라고 밝히며, 한국이 아닌 중국을 들고 있는 것) 실제 있었던 인류학적·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으며, 다만 필로미나 컹크 특유의 농담으로 각 소재들을 비틀거나 희화화하여 전달하고 있고, 그게 지구 이야기의 핵심 재미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들은 종종 너무 진중하고, 오랜 시간 많은 에피소드를 시청하기엔 지루한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사 중 하나인 BBC의 프로그램들 또한 예외는 아닌데요. 놀랍게도 지구 이야기를 포함, 위에 잠깐 언급했던 Cunk on 시리즈의 모큐멘터리 역시 BBC에서 만들어 배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다큐 제작 역량 덕분에 (비판적인 시청자라면) 다른 다큐 못지않게 전달되는 정보를 모두 습득하면서도, 매 편을 코미디 쇼 보듯이 재미있게 술술술 넘겨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는 분, 코미디를 좋아하시는 분 모두에게 추천드릴 수 있는, 편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