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저는 몬스터 헌터 본가 시리즈 타이틀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유가 여러 가지인데요. 우선 PS를 포함해 콘솔을 사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닌텐도 스위치 한 대만 갖고 있고요. 요즘에야 PC 플랫폼에서도 몬헌 타이틀을 사서 (원한다면 컨트롤러까지 연결해) 즐길 수 있고, 게이머들 사이에서 콘솔 보급도 굉장히 잘 되어 있으니 접근성이 굉장히 좋지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환경 자체가 달랐습니다. PS나 엑박 등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이에 대비해 PC 게임 시장이 순항 중이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컴퓨터로 (온라인) 게임하기 바빴으니까요. 이후 국내에선 2010년대 이후 모바일 게임들이 엄청나게 성행하면서 PC와 게임 시장을 거의 양분하다시피 했고요.
레저 시장이 워낙 커져서 취미 생활의 폭도 넓고 다양해졌다지만, 솔직히 말하면 냅다 지르기에 콘솔이 싼 편은 아니죠. 시작을 위해 기기와 타이틀 몇 장만 사도 콘서트나 뮤지컬을 최소 네댓 번 이상은 다녀올 돈이 필요하니까요. TV 등 스크린 장비가 조건이기도 하고요. 100% 게임만을 위해 마련하는 경우가 드물기도 하지만, PC 세팅 시 모니터를 마련하는 것과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1인 가구도 많고, 대 OTT 시대이다 보니 집에 TV가 없는 경우도 많고요. 내가 이 모든 것을 전부 구매해서, 최소 몇 시간 ~ 몇십 시간 이상 만족스럽게 꾸준히 즐길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면 사기가 망설여지죠. 때문에 확실히 목표로 하는 게임이 없으면 콘솔 진입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새삼 이런 물리적·심리적 장벽들을 모두 허문 스위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거기다 저처럼 키보드·마우스에 비해 컨트롤러 사용을 어려워하는 게이머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저는 특히 검지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L, R 계열 버튼이 익숙하지 않아 빠르게 사용해야 할 때 좀 곤란한 편인데요. 안 그래도 판정이 빡빡하고 고된 반복 훈련을 요구하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컨트롤 문제로 몬헌 입문 자체가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친구들과 잠깐 플레이해 보거나, VOD 플레이 영상 등으로 간혹 확인해 본 게 전부였죠.
이렇다 보니 꽤 매력적인 콘셉트를 가졌음에도 프랜차이즈 자체를 지나치게 되어,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요. 위 모든 문제점이 해소된 게임이 9월 중순에 출시되어 현재까지 잘 즐기고 있습니다. 바로 이번 글에서 소개할 나이언틱의 '몬스터 헌터 나우'(Monster Hunter Now)입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한 최적의 사냥 경험
개발사 이름을 보고 글을 읽기 전부터 눈치채셨겠지만, 몬헌 나우는 '포켓몬 고'(Pokémon GO)와 같은 GPS 기반 AR 게임입니다. 몬스터들이 지도상에 랜덤하게 배치되면, 내 캐릭터의 상호 작용 범위 내로 들어오도록 이동해 사냥하면 되는 간단한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포켓몬 고를 서비스한 노하우 때문인지, 게임성 측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온 듯한 인상입니다. 사실 전투를 제외하면, 반쯤은 포고에 몬헌 스킨을 씌운 모드 같기도 한데요. 한 달 반 가량 플레이 하며 느낀 주요 특징을 간단히 정리해 볼까 합니다.
1. 세로 모드로 한 손 조작이 가능한, 편안한 전투 컨트롤
몬스터 헌터 나우의 컨트롤은, 이게 정말 몬헌 시리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터치 & 스와이프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장착 무기별로 효과가 다르나, 기본적으로 짧은 터치와 꾹 누르기를 통해 공격 및 일반 스킬을 사용하고, 스와이프로 회피 및 조건부 스킬을 사용합니다. 특수 스킬이나 일부 장비 스킬(록온 등)은 간단히 버튼을 눌러 사용할 수도 있고요. AR 게임인 만큼 조준은 자이로 센서를 통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처리합니다. 그나마도 근접 무기는 아예 알아서 처리되고, 원거리 무기도 시스템적으로 오토 에이밍에 준하는 조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콘솔 게이머들이 으레 그렇듯, 몬헌 본가의 조작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컨트롤 측면에서 태생적으로 한계가 크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론 적절히 낮은 난이도의 조작 방식으로 몬헌의 사냥을 잘 표현해 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실 모바일 게임 중에서 비교하자면 조작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으며, 빠른 몬스터의 행동을 잘 캐치해 (피드백이 불분명한) 터치 조작을 통해 전투에 임해야 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황도 많고 짜릿한 순간도 종종 연출됩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 시 자주 느낄 수 없는 감정이어서, 저는 굉장히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네요.
2. 수집하고 강화하여 더 강한 적을 쓰러트리는 성장 체감
게임의 전체적인 구조 역시 선형적으로, 간단히 보고 느끼는 대로만 플레이해도 충분히 강해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주변 몬스터와 채집 포인트에서 자원을 수급하고, 이를 무기/방어구 제작과 업그레이드에 사용해 파워업 하여, 다시 더 높은 성급의 몬스터를 공략해 더 상급 자원을 모아 장비를 강화한다는 단순한 성장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데요. 장비류, 특히 무기를 상위 등급으로 만들어 줬을 때의 성장 체감이 굉장히 큰 편이어서, 이를 한두 번 맛본 뒤에는 계속 무기 강화를 위해 사냥을 다니게 됩니다.
장비를 갖출 때, 무기에는 속성 대미지가 있고, 각 장비에 모두 종류·등급 구간별로 스킬이 부여되는 만큼, 사냥하는 몬스터에 적합한 장비나, 서로 시너지 효과가 있는 장비들을 조합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효율이 낮은 장비에 재료를 잘못 소진할 경우 며칠 분량의 노고를 허사로 만들게 되는 경우가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초반 구간은 튜토리얼부터 추천해 주는 무기인 한손검과, 함께 사용할 레더 세트, 쿠쿠루 세트 등의 방어구를 활용해 재료를 수집하면서, 이후엔 본인의 스타일과 다른 유저들의 평가를 종합하여 중점적으로 사용할 무기류를 선택하고, 이에 맞는 방어구를 차근차근 맞춰 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 쫓기는 듯한 느낌이 없는, 서브 게임으로서는 최고의 게임성
보통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으레 피로도가 즐거움을 넘는 순간이 오고, 그 이후엔 게임을 해도 즐겁지 않게 되어버리는 게 일상이죠. 이런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몬헌 나우의 경우 지속적으로 접속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강박적인 압박이 일반적인 모바일 게임보다 확연히 낮다는 특징 덕에 너무나도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문득 게임을 하고 싶을 때 게임을 켜서 잠시 플레이한 뒤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요.
핵심 콘텐츠가 (협력 중심의) PvE이고, 랭킹 시스템이나 PvP 콘텐츠가 없어,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플레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 게임은 켜 봤지만 눈 앞의 몬스터를 처치할 시간이나 정신은 없다면, 페인트볼로 마킹하여 48시간 내 원하는 곳에서 아무 때나 사냥을 이어가면 됩니다. 매일 일정량의 동반자 페인트볼을 주기 때문에, 접속하지 않은 시간 중에도 백그라운드 상태에서 자동으로 몬스터들을 마킹해 주기도 하고요. 꾸준히 이벤트가 생기지만 마찬가지로 경쟁형 이벤트가 아니라, 추가 아이템을 지급하거나 협동 사냥을 유도하는 내용의 콘텐츠인 만큼 부담감이 없습니다.
4. 성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인게임 과금 상품
장비 성장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인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일단 현재까지는) 과금 상품으로 아예 판매되고 있지 않습니다. 현금 혹은 현금성 재화로 판매하는 아이템/패키지가 성장에 직결되는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과 비교했을 때는 꽤나 관대함이 느껴지는 결정인데요. 인앱 결제 상품들은 말 그대로 편의성을 증강시켜 주는 보조적인 아이템 구성으로 한정되어 있고, 이마저도 프로모션 코드(쿠폰)나 이벤트 보상 등으로 종종 뿌려 주고 있어 플레이에 모자라단 느낌이 거의 없습니다.
GPS를 조작하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직접 이동하고 시간을 쏟는 만큼 진척도가 늘어나는 게임이기 때문에, 결제를 하면 우선 몸이 굉장히 편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과금 효율이 좋지 않아 다른 모바일 게임들 하듯이 돈을 쓰기는 아쉽습니다. 저도 일부 패키지 아이템을 구매해 플레이하고 있지만, 솔직히 구매를 하지 않아도 게임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 판매 아이템들이 거의 개발사 후원 용도로 보일 지경입니다. 쉬는 날 넓은 곳으로 산책을 나가는 등, 집중적으로 플레이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패키지 아이템 위주로 구매하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수작!
물론 몬헌 나우라고 마냥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터치 조작은 판정이 석연찮고, 가끔 있는 (특히 연결 문제 관련) 버그로 종종 불쾌한 경우도 있고요. 무기별 밸런스 불균형이나, 기존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 비해 확연히 적은 몬스터 종류는 솔직히 좀 아쉽습니다. 유저 밀집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파티 플레이가 제한적인 점도 시스템적으로 더 나은 방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출시 이후 약 40일간 플레이하면서 느낀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헌 나우에 희망적인 이유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닐까 합니다. 오류나 불편함은 업데이트로 꾸준히 개선되고 있고, 설정 상 아직 등장하지 않은 요소들은 반대로 말하면 추후에 언제든 추가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기도 하니까요. 다만 예고되는 콘텐츠 업데이트의 텀이 좀 긴 편인지라, 볼륨이 탄탄하게 나오거나, 기간이 단축되었으면 하는 소망은 있습니다. 물론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히 재미 있는 게임이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하여 오래 플레이할 수 있는 더 좋은 게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