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퍼즐 어드벤처 게임, 라스트 데이 오브 준
'라스트 데이 오브 준'(Last Day of June)은 국내 게이머에게는 생소한 개발사인 이탈리아 Ovosonico의 퍼즐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게임 타이틀은 표면적으론 '6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그래서 저는 이전에 스팀 주말 특가 목록에 있길래 '안 그래도 6월이니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으로 구매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게임 출시일은 2017년 8월 31일인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 게임을 플레이하고 여주인공의 이름이 June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각종 단서를 찾아서 퍼즐 맞추듯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게임의 특성상 최대한 절제하여 리뷰를 작성하더라도 스포일러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애초에 매우 쉬운 게임이기 때문에 이미 수많은 게임 리뷰가 나와 있으며, 특히 개인방송에서 많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조금만 검색해 보면 자료가 쏟아지는 판이기는 합니다. (심지어 구독 수를 늘리고자 아예 게임 내용 전체를 찍어 올리거나 스토리를 전부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태반이니... 개인적으론 스포일러 당하는 걸 피하기 위해 전혀 검색을 하지 않고 진행했네요.) 나 혼자 조심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조금이라도 게임 내용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을 위해 리뷰 내용은 스팀 상점 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에 게임의 방향성 정도를 덧붙이는 수준으로 하고, 이에 앞서 게임의 장단점부터 간단하게 언급하려고 합니다. 크던 작던 스포일러 자체를 바라지 않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고 넘기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장단점 요약
장점
- 동화같이 아기자기하고 나름 독특한 그래픽
- 서정적인 배경음악
-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
- 몇 번의 시행착오를 요하지만 어렵지 않은 퍼즐
-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지만) 출중한 스토리 중심의 게임
단점
- 게임의 특성상 떨어지는 자유도와 정해져 있는 엔딩
- 배경 묘사에 (특히 원거리) 블러 처리가 심해서 눈이 피로하지만, 설정으로도 수정 불가
- 알아서 주어지는 반복 행동 생략을 제외하면 전혀 스킵을 할 수가 없음. 때문에 퍼즐을 집중적으로 풀어야 하는 중반의 경우 게임이 다소 루즈해져요.
- 게임의 전체 볼륨에 비해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은 편. (정가 21,000원) 할인 기간을 노려 봅시다.
- 너무 영화적 연출에 포커스를 맞춘 듯한 게임 플레이
- 내레이션의 대부분이 비언어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관성이 조금 떨어지는 경우가 군데군데 있어요.
적어놓고 보니 단점이 장점을 뛰어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스토리 하나로도 모든 단점이 상쇄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분명 한 번 플레이하기에는 충분히 좋은 게임입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여러 수상 이력과 리뷰 사이트의 호평이 뒷받침하는 만큼 믿어도 좋겠다 싶고, 게이머들의 스팀 평가도 (비록 간간히 비판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호평이고요. 게임의 연출과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영화 같은 게임'을 좋아하고, 내용의 의미를 곱씹으며 다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구매를 적극 추천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살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건가요?"
한 커플이 나루터에 앉아 있습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둘은 차로 돌아가 귀갓길에 오르죠. 집을 얼마 남기지 않은 동네 앞 도로에서 커플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남성은 소파에서 화들짝 놀라며 깨어납니다. 이는 그의 악몽이었던 것. 바로 게임의 도입부입니다.
게임 진행은 매우 단순합니다. 깡통 따개를 찾기 위해 들어간, 지금은 창고로 사용되는 옛 화실에서 그는 자신이 그렸던 아내와 마을 사람들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림에 깃든 힘과 자신의 기억을 이용하여 과거 일련의 사건들을 바꿀 수 있게 된 건데요. 절망과 무기력함 속에서 살고 있던 그에게 있어 말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죠.
그림에 손을 얹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인데요. 자신뿐이 아니라 다른 이의 시점에서도 (게임적 허용 그 자체로) 행동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 또한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 인물의 행동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조합되면서, 각각 다른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 불행한 과거의 내용을 바꾸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이 게임의 핵심 줄거리입니다. 여기서 게임 플레이는 사실상 중심 플롯 진행의 장치라고 볼 수 있는 거겠죠. 나쁘게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스토리와 연출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 전역에 흩어져있는 각 인물들의 기억 조각을 수집하거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복선 연출을 확인하는 것도 게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되는 시도와 이어지는 실패로 인한 주인공의 절망감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담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고요. 과연 그는 불행한 과거를 되돌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목표는 일관되게 단순하지만, 그만큼 강력하기에 동기부여가 확실합니다.
스토리 중심 게임을 영상으로 먼저 보느니, 차라리 아예 모르고 사는 게 낫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저는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 가능한 한 검색은 최대한 피해 가면서 엔딩을 보았습니다. 일단 게임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뼛속까지 스토리 중심의 게임이기 때문에 스포일러 자체가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 글을 읽고 라스트 데이 오브 준을 접할 잠재적 게이머 역시 그렇게 플레이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유튜브, 치지직 등 개인방송 스트리머들의 영상을 보는 것은 극구 말리고 싶어요. 앞서 게임 자체가 영화 같다고 소개드렸습니다만, 만약 영화를 보는데 설명을 해주겠답시고 누군가 나를 마주 보고 계속 해설을 하거나, 극장의 다른 관객들의 잡담이나 리액션이 지나치게 크다면 어떨까요? 스트리머 방송에선 이와 마찬가지로 방송자와 시청자들의 존재 자체로 게임의 몰입도가 극도로 떨어지며, 이후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도 이미 집 나간 감동은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구매할 만큼 욕심이 나지 않거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직접 플레이 대신 영상으로라도 엔딩을 확인하고 싶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차라리 플레이를 미루고, 할인을 기다리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는 사실 스트리머들의 도덕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영화 등의 장르에 비하면야 게임 스트리밍 이슈는 비교적 최근 부각된 것이 사실이죠. 1인 방송의 경우 수요자보다 공급자의 사회적 책임이 압도적입니다. 여느 지적 재산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개인적으로 콘텐츠를 불법 다운로드하여 혼자 즐기는 것 이상의 파급력이 있기 때문인데요.
라스트 데이 오브 준의 경우에도 출시 직후부터 상황은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유튜브에 검색어로 '라스트 데이 오브 준'을 놓고 검색해 보면 적게는 몇 천에서 많게는 n만 단위에 이르는 조회수의 게임 플레이 영상이 즐비한데, 이들의 절대다수는 스토리 및 엔딩에 대한 여과가 전혀 없었죠. 혹자는 "방송을 통해 게임을 접한 유저가 매력을 느껴 구매를 하게 되는 순기능이 더 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각종 미디어로 게임 내용을 전부 알게 된 사람들 중 몇이나 이 게임을 샀을까요? 물론 게임을 할 때마다 과정이나 결과가 다른 샌드박스 식의 게임, 플레이 자체에 방점을 둔 게임이라면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만, 이런 스토리 중심의 게임들은 케이스 자체가 다릅니다. 스토리를 보려고 하는 게임의 줄거리와 중요 전개 포인트, 결말을 다 알고 있는데, 과연 구매로 연결이 될까요? 근거도 없는 주장이지만, 딱히 양심이 느껴지지도 않죠. 게이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스토리가 게임성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을 엔딩까지 여과 없이 공개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지... 간혹 보면 허가 없이 남의 창작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수익을 챙기는 것도 모자라 이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다수 게임 방송인들의 양심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심지어 이런 사람들이 대중적 인지도를 얻으면 게임계를 대표하여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게임 BJ들을 "게임업계 대표"랍시고 패널로 세우는 방송 쪽 식견 수준은...) 이런 행태는 법적으로는 물론이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쟁을 위해 좀 더 자극적이고 불법적인 내용을 다루는 개인 방송의 문제가 게임 쪽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거죠.
게임과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관계는 결코 "닭과 달걀" 같은 케이스가 아니며, 상하관계가 명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리머 개개인의 자율 규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만큼 신고 체계를 포함한 적극적인 법적 장치의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어요. 실제로 모 게임사들의 경우엔 게임 출시 이후에도 일정 기간 엠바고를 건다거나, 초반부 챕터 이후의 내용을 송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의 조건을 걸고 있기도 하죠.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렉카"들에게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도 어기는 이들이 생겼지만요.)
P.S.
어쨌거나 이런 불편한 현실은 잠시 뒤로 하고, 일단은 게임 소개의 마지막을 공식 트레일러의 주제가로 하려고 합니다.
제겐 게임 구매에 직접적으로 트레일러 영상에 깔린 이 곡의 영향이 컸습니다. 게임의 분위기와 주제를 표현하는 데 이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노래는 없으리라 생각해요. 영문 위키피디아의 후문에 따르면 게임 디렉터 마씨모 과리니(Massimo Guarini)가 영감을 받아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 바로 스티븐 윌슨의 다른 곡인 'Drive Home'이라고 (정확히는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 해요. 스티브 윌슨이 게임 내 음악 전반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런 점들이 계기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겠죠.
게임은 이만큼만 살펴봐도 단번에 비슷한 소재의 영화 <나비 효과>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호평을 받았던 1편과 다르게 진부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던 후속편들을 감안해 보면, 이미 클리셰로 자리 잡은 이런 플롯 구성은 다행히도 게임이라는 특성을 통해 더 진보한 형태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겠죠. 감성 충전은 하고 싶지만, 영화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라스트 데이 오브 준을 한 번 플레이해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