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8/10, 매우 추천!
니켈로디언의 카툰 시리즈 '아바타: 아앙의 전설'의 넷플릭스 실사판. TV 애니메이션이 어린이 타깃으로 장난기 넘치고, 각종 부차적인 에피소드들이 많았다면, 이번 실사 드라마는 성인이 된 기존 팬들의 눈높이에 맞춘 듯, 좀 더 성숙하고 무게감 있으며, 메인 스토리라인에 중점을 둔 드라마 시리즈라는 평가. 혹평을 받았던 이전 실사 영화나, 제작 과정 중 원작자 등과의 불협화음에 따라 팬들은 불안한 마음이었겠지만, 적어도 현재(시즌 1)까지는 완전 합격점!
20년 만에 화려하게 재등장한 오리엔탈 대서사시
양심적으로 맨 앞에 퍼런 피부의 나비족 사진을 걸어 두고 "제임스 카메론 영화와 헷갈리시지는 않으셨나요? ^^" 식으로 시작하는 서두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너무 진부하고 재미없는 글쓰기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넷플릭스에서 떡하니 썸네일 이미지부터 뜨는데 그걸 누가 혼동하겠습니까? 이미 실사판 영화도 있었고요.
요즘이야 미국 시장에서도 애니메이션 얘기를 하면 보통 일본 작품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단적인 예로 마블만 해도 코믹스는 활발하지만, 애니메이션화 되는 것보다 바로 실사 영화화 되는 것이 훨씬 크게 주목받는 형국이다 보니 허리 라인이 끊어져 버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한때는 일본 애니 못지않게 인기 몰이를 하던 미국 자국산 TV 만화영화 시리즈가 꽤 있었고, 그중 하나를 자신 있게 꼽아 보자면 바로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 아닐까 해요. 원작 애니메이션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년 넘게 방영된 미국 인기 카툰 시리즈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나루토, 드래곤볼, 원피스, 포켓몬스터 등 일본 애니메이션들과 견줄 만한 크고 견고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현재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요. 어린이들을 타깃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만 고려하고 본다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니켈로디언(Nickelodeon) 답게 위트 있는 코미디가 잔뜩 섞인 유쾌한 작품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대해서 몰입하기 좋은,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졌으며 꽤 진중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시리즈예요. 직접 보고 나니, 먼저 실사화가 시도되었던 영화에 대한 혹평이 이해가 됐다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조금 빠르겠습니다.
참고로 작품의 타이틀 전면에 아바타(Avatar)가 등장하는 이유는, 작품의 주인공인 아앙이 4개 원소의 세상, 그리고 현실 세계와 영혼 세계 사이의 균형을 책임지는 존재로, 대를 이어 환생(reincarnation)하는 화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리뷰어들이 "한국 관객들은 헷갈려 할거다"라고 주장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시리즈 제목이, 인간이었던 주인공 제이크 설리 등이 판도라의 영험한 힘에 의해 나비족의 몸에 현신/현현해 동화되기 때문인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유의 칭호인 셈이죠. 어쨌거나 '아앙의 전설'이 아주 잘 됐기에, 후속작으로 '코라의 전설'이라는, 아앙의 차기 대를 잇는 아바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도 나왔습니다만, 이쪽은 작품성이 떨어지고 실제로 평가가 크게 좋지 않아요. (저는 그냥저냥 재미있게 봤습니다.)
실사화를 통해 인상적으로 그려낸 첫 시즌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니켈로디언과 협업해 만든 '아바타: 아앙의 전설' 시즌 1은, 앞서 언급한 카툰 시리즈의 장점을 대부분 잘 가져온 좋은 작품입니다. 원작의 첫 챕터인 '물의 장'(Book One: Water)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주 스토리 라인이 시작되기 약 100년 전, 불의 제국의 침략에서 도망친 남쪽 공기의 유목민 일원이자, 꼬마 아바타인 에어 벤더 아앙(Aang)이, 폭풍을 피해 초인적인 힘으로 한 세기동안 스스로를 빙하 속에 가뒀다가 남쪽 물의 부족장의 자식인 소카(Sokka)와 카타라(Katara) 남매에 의해 발견되고 정신을 차리면서부터, 북쪽 물의 부족이 있는 아그나 켈라의 전투까지를 아우르며 일어나는 대서사시와 같은 여정을 그려내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고 내용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삼인방이 세상을 구하고자 나아가면서, 서로 도우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다 더 장엄하게 그려내는 것에 또 다른 감동을 느끼실 수 있겠다 싶습니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으셨더라도 아주 즐겁게 볼 수 있겠지만요.
실사화되면서 생긴, 애니메이션과 결코 적지 않은 차이도 있는데요. 이제 성인이 된 기존 팬덤의 눈높이에 맞는, 좀 더 성숙하고 정교한, 때론 심오하고 다크해지기까지 하는 원소 벤더들의 세계관 배경을 토대로, 역시 각 인물들이 겪는 고난과 시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이들의 감정 및 내면의 변화를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20분 남짓하게 작은 에피소드로 쪼개졌던 원작과 달리, 1시간이 넘는 8개 화로 밀도 높게 통합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생각 없이 마구 몰아 보기는 조금 힘들지만, 덕분에 매 화를 한 편의 영화 보듯 진지하게 뜯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외에도 약간의 캐릭터성 변화나 (대표적으로 원작에서는 가볍게 다뤄졌던 아줄라의 모습, 그리고 제왕 오자이와 두 자녀의 관계) 스토리 변경·추가가 있지만, 전체 스토리라인은 변하지 않았으며, 원래 하고 있었던 이야기의 훼손이 없기에 여전히 몰입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민족적 다양성이 돋보이는 드라마
원작부터 그렇지만, 배경부터 동아시아, 아메리카 원주민 등의 문명을 모티브로 삼아 일종의 오리엔탈 판타지를 만들어 낸 점, 그리고 실사판 역시 제작진부터 다수의 캐스트까지, 많은 참가자가 아시아계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소수 인종인 점이 눈에 띄죠. 최근까지도 북미에서 소수자들이 만드는 콘텐츠들은, 이들이 이주하는 등 자리를 잡으면서 겪는 고충, 2세대·3세대의 정체성 혼란 및 백인 중심적인 사회나 반대로 선대와의 이질성에 따른 충돌을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에 대부분의 작품들이 몰두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의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작품적인 경향에 피로도가 높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이번 '아앙의 전설'에서는, 실제로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높은 수준의 완성도로 만들어 가는 것을 통해 소수 인종의 제작자·배우들이 약진하는 계기가 되어 주지 않을까 해서 저는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드라마 제작자 인종 및 다양성 이슈에 도대체 대한민국 관객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제일 많이 소비하는 작품들이 죄다 할리우드 등의 미국 주요 제작사에서 나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북미 지역에서의 콘텐츠 제작 지형도가 바뀌어 가는 것은 분명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점은 꼭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끽해봐야 대부분의 촬영 분량이 싱가포르에서 채워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같은 작품이 등장하고, '이터널스'에 (미국인입니다만) 마동석이 출연한다던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시무 리우가 주연으로 분한다던가, '더 마블스'에 박서준이 등장한다던가 하는 부차적인 수준에 환호해 왔다면, '아앙의 전설' 실사판과 같은 작품들이 더 잘 나가면서 상업성을 갖추기 시작하면 아예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진지한 작품들에서도 더 많은 다양성을 찾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아시아계 이민자 스토리보다 피로도가 높은 작품들이 있다면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 '존 윅', '본 아이덴티티'라던가, '노트북', '브리짓 존스의 일기' 따위의 영미권 코카시안 현대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데요. 막말로 이런 작품들에서 아시안 주인공을 쓸 일이 없으니, 더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해서 차라리 빈도수라도 줄여 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