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9/10, 강력 추천!
평생 이기적으로 살았던 엘리너, 죽어서 지옥에 갈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선한 이들을 위한 '굿 플레이스'에 입성! 자신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기이한 해프닝을 엘리너가 친구들과 함께 해결해 가는 내용의 철학적 코미디!
"Eleanor? come on in."
금발의 미녀인 엘리너 셸스트롭,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저승으로 갑니다. 저승에서 눈을 떠 보니, 충격적이게도(?) 천국, 극락에 해당하는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에 와 있습니다. 신적인 존재인 설계자 마이클에게 처음 보는 굿 플레이스 동네 투어 가이드도 받고, 그가 등장하는 마술 같은 사후세계 OT 영상도 시청하죠. 엘리너의 "취향에 기반한" 꿈의 거주지도 받고, 말 그대로 그녀의 "소울 메이트"인 철학자 치디 아나곤예도 소개받게 됩니다. 이웃집 거대한 맨션에 살고 있는 타하니와 지안유 커플도 만나게 되고요.
이렇게 꿈만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엘리너는 몸 둘 바를 몰라합니다. 기쁘고 감개무량해서? 살아생전의 선함을 인정받게 된 뿌듯함으로? 아니, 전혀 반대의 상황인데요. 지금껏 자기 안위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온 엘리너, 종교 따위 믿지 않지만 사후세계가 있다면 당연히 지옥에 갈 거라 생각하던 위인입니다. 그런데 죽어 보고 나니 동명이인이자 인권 변호사, 액티비스트인 "또 다른 엘리너 셸스트롭"으로 오해받아 굿 플레이스에 오게 된 것이죠.
남아 있는 일말의 양심으로 그녀는 치디에게 이런 상황을 고해하고, 설명을 들은 치디는 패닉에 빠집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높은 수준의 윤리적 기준을 가진 그로서는, 엘리너가 부당하게 굿 플레이스에 오게 된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정말로 "나쁜 사람"인 엘리너가 자신의 소울 메이트로서 바로 옆에서 몰래 일탈을 일삼는 상황 그 자체로 끔찍한 고뇌에 빠지고 맙니다. 엘리너의 요청처럼 그녀를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좋은 사람으로 갱생시키는 데 일조할 것인지, 현재 상황을 모두 폭로하고 그녀를 '배드 플레이스'로 보내 버리고 말 건지 고민하죠. 이 모든 것들 덕에 치디는 트레이드 마크 같은 증상인 스트레스 복통에 시달립니다.
그런 전제로도 이미 충분히 끔찍하지만, 일은 더욱 꼬여만 갑니다. 술주정을 부리며 엉망진창인 저녁을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 굿 플레이스는 말 그대로 망가져버리고 마는데요. 하늘엔 거대 새우가 떠 다니고, 거리엔 고삐 풀린 기린이 설치고 돌아다니며, 공기 중엔 출처를 알 수 없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가 BGM처럼 울려 퍼집니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엘리너가 전날 치디 곁에서 행했던 각종 악행들과 일치하죠. 그런 진실을 들킬까 두려워하는 두 사람은,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엘리너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합니다.
꼬리를 무는 반전의 반전, 다음 화가 궁금해지는 스토리라인
여기까지가 굿 플레이스의 전제가 되는 극 초반부 내용입니다. 너무나 매력적인 설정 때문에, 저는 정신없이 완결까지 달렸네요. 2016년부터 제작된 4개의 시즌은, 바로 직전 리뷰 했던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마이클 슈어가 제작한 작품이기도 한데요. 역시나 비슷한 결의 재치 있는 코미디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안 그래도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개그를, 현실감 제로인 판타지 사후 세계라는 배경을 통해 극대화시키고 있어요. 특히 굿 플레이스에서 사실상 약방의 감초 수준인 캐릭터로, 말도 안 되는 내용 전개를 가능케 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웃음벨이자 감동 폭탄인 재닛의 역할을 통해 이런 점을 선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 편, 매 시즌 넘어갈 때마다 인상적인 점은 다음 내용이 정말 정말 궁금하게 만드는 끊어 가기 스킬인데요. 클리프행어(cliffhanger)라고 하죠. 이는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사건 베이스로 구성되어 기승전결이 꽤 확실한 편인 B99과는 반대의 느낌이 아닌가 합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거의 한국 드라마 그 이상의 수준이에요. 충격적인 반전의 반전이 이어지고, 어제까지는 진실이었던 것이 오늘 와서는 새빨간 거짓이 되기도 합니다. 웃기고 울리고, 들었다 놨다 하는 게 흡입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테드 토크, 게 섰거라!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윤리학 강의!
다른 드라마들과 비교해, 아무래도 굿 플레이스의 가장 큰 차별점은 대놓고 시청자 면전에 도덕적 고찰을 던져주는 도전이 아닌가 해요. 문제적 인간인 주인공 엘리너와 함께, 특히 아예 철학자이자 철학 교수인 치디를 내세워 윤리학 강의를 해 버립니다. 물론, 쇼의 주제이기도 한 대명제는 '선함이란 무엇인가? 선한 행동, 선한 사람이란 무엇인가?'인데요. 네 개 시즌 내내, 이들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속에서 각자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설명만 놓고 보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정작 그렇지도 않습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실감 넘치는 윤리 수업 시간인데요. 역대 유명 학자들이 해답을 찾고자 씨름해 왔던 각종 윤리학 쟁점들을 두루 다루지만, 모든 시청자가 이해하기 쉬운 수준으로, 종종 '체험 학습'을 곁들여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학창 시절 윤리·도덕 수업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마 아무도 안 졸았을 겁니다.
불완전함에서 찾아내는 완전함
굿 플레이스에서 그려내는 세상은 의외로 우리의 현실과 꼭 닮아 있습니다. 인식을 초월하는 마법과 같은 일들이 있을 뿐, 모든 것들과 모든 이들은 각자 제각각의 결함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 흠잡을 데 없을 것처럼 흘러가나 싶으면 "와장창" 소리가 절로 나게 고꾸라져버리고 맙니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좌절감은 어쩌면 현실 그 이상의 수준으로 그려지고요. 주인공들은 언제나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어떤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이 되고자 노력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위해 더 멋진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죠. 그 결과 모두가 성장하고, 진실한 우정과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되고요. 이 모든 것들을 각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힘을 합쳐 이루어냅니다. 결국 그들은 마치 삼라만상 진리의 경지와도 같은, 충만한 삶과 죽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인 스포일러를 피하려다 보니, 결국 시리즈 전체를 요약해 버리는 짓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진정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소개드린 내용에 흥미가 생기셨다면, 나머지는 넷플릭스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재치 있는 시트콤을 좋아하시는 분들, 마음이 따뜻하고 충만해지는 드라마를 원하시는 분들께 굿 플레이스를 강력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