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층에 정신 나간 놈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
간밤에 정말 황당한 해프닝이 있었죠. 윤석열이 "종북세력척결"을 이유로 불법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명분도 없었고,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법에는 문외한인 저같은 사람도 캐치할 수 있을 만큼 불법/위헌임이 명백한 지령 하에 선언됐던 계엄령이었던지라 두려움과 황당함이 동일한 수준으로 끓어 올랐던 밤이었습니다.
A Few Moments Later...
계엄령을 선포해도 국회 기능은 마비되지 않습니다. 군경을 투입해서 국회를 봉쇄하려 했지만 윤씨 생각대로 잘 되지는 않았고 (아니 국민 수준이 있는데 군·공무원들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됐겠습니까...) 해서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약 세 시간만에 국회에서 계엄령 폐기의 안이 통과가 돼서 대통령이 도로 해제까지 하게 된 상황이 됐죠.
결국 국무회의 끝에 계엄은 해제되었습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네요. 모든 국무위원 등 대통령실 수족이 전부 자진 사퇴하고 있고, 범여권에서도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계엄이 본인 의중대로 돌아갔으면 맘에 안 드는 정계 인사를 전부 데려다 총살이라도 하려 했겠지, 참 아찔한 생각입니다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정황도 드러나는 중이고...) 일단은 국민 일상에 탈 없이 소강 국면에 이르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탄핵은 피할 수 없다.
사실 주변에 정치 얘기를 잘 안 합니다. 현안에 대해 서로 얼굴 붉힐 일을 만드는 게 싫다 라는 느낌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이성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동료 시민이라면, 의견이 달라도 원활히 대화하고 또 타협해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치 성향"따위에 의탁하지 않으려 하는 개인적인 소신이기도 하고요. 그 미디어를 만드는 추악한 이들이나, 이런 저질 플랫폼들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좌우 불문 정치꾼들 자체가 싫어서인 것도 있습니다. 거기에 놀아나서 1찍이니, 2찍이니, 전라도가 어떻니, 경상도가 어쩌느니,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다고 서로 조롱, 비방하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군상들도 상대할 가치를 못 느껴온 점도 주요하겠습니다.
근데 간밤 이슈로 생전 처음 국가 정치를 조금은 준엄한 시점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막말로 저는 윤씨의 멸치·콩 슬로건 역시 지지권 결집을 위한 가장 무도인 줄 알았거든요. (아마 정신질환이 없다면 정용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이에 호응했을 겁니다.) 굳이 굳이 여소야대 국면에서 범야권이 싫어할 만한 인사만 데려오고, 법안마다 거부권 남발하는 것 역시 그저 정치 구도 상 균형 유지를 위한 선택인 줄만 믿고 있었습니다. 근데 실제로 60-80년대 대공 수사 공안 검사나 가질 법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집증적 인사가 선출직 대통령이었다니! 옆집 노부부가 태극기 부대인 것은 상관 없지만, 한 민주 국가의 프린켑스(princeps)가 사익에 눈이 먼 망상적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오늘 새벽을 끝으로 인간으로선 해 줄 수 있었던 모든 존중심이 없어졌습니다.
손바닥에 왕자를 써 놓고 토론에 나온 것과 관련한 여담, 장모와 처가 저지른 온갖 부정·부패, 처와 여러 사이비 인사들이 국정에 개입하며 농단해 왔다는 제보, 검사 세력을 끼고 돌며 입맛 따라 정치권을 사냥하려 한다는 비난, 법으로 정해진 그 이상으로 월권하려 했던 행보에 대한 논란까지, 이젠 그 어느 것도 무죄 추정이 어려운 상황이 됐죠.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그를 버렸던 것보다, 윤핵관들이 윤씨를 버리는 속력이 훨씬 빠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전 내각이 사퇴했죠. 😂) 지팔지꼰이라고, 이제 국민의 분노를 마주할 일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