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7.5/10, 추천!
위기의 조선업 회사, 인사팀 막내로 발령 난 대리 '강준희'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인간적인 눈높이에서 그려낸 영화. 문민정부 이후로도 20여 년 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해 약자는 등한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노조를 기득권 취급하며 악마화하는 데만 혈안이 된 행정부, 노조가 없고 임직원 평균 임금이 중위 소득 100%에 못 미치는 기업 환경 따위에 감동받는 자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법한, 앞 세대가 만들어 아직까지도 고치지 못한 시스템의 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
불편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
지난 토요일 KU시네마테크에서 있었던 영화 '해야 할 일'의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규모가 작은 독립 영화이고, 특히 노동계의 현실을 담은 작품이라 벌써부터 색안경 뒤로 눈알에 쌍심지 켜져 있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보는데요. 당일까진 몰랐는데, 제작사와 감독, 배우 분들까지 오시는 GV가 함께 있는 시사회였고, 시나리오를 직접 쓰신 감독분의 말씀을 빌어 말씀드리자면 본인이 기업 인사팀에서 실제 겪었던 일들, 그러니까 실화를 토대로 각색해 만든 영화이기에 무언가 과장하고, 왜곡할 여지는 적었을 거라 봅니다. 실제로 주인공 시점에서 카메라가 주도적으로 돌아다닌다는 느낌보다는, 미장센 감각의 제삼자인 관찰자 시점에서 그저 담담히 지켜만 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영화인지라, 오히려 타이틀인 "해야 할 일"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왔다 갔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뭐, 그쪽 분들 중에 확증편향 있으신 분들은 아마 그렇게 해석해서 아전인수식으로 우기실 것 같기는 합니다. 😅)
최근 국내·외 경기가 어렵기도 하고, 특히 한창 잘 나가던 조선업은 근 수년간 더욱 어려운 시간을 보내오기도 했죠.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양중공업' 역시 "한때는 잘 나가던" 건실한 조선업계 중견 기업 포지션인데요. 이런 회사의 인사팀으로 발령받게 된 주인공 강준희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시작된 정리해고의 최전선에 서서,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인원들을 내보내 소위 말하는 '인건비 효율화'를 할 수 있을지, 단두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포지션에 서게 됩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처음엔 심적으로 거리를 두며, 객관적으로 그나마 임직원들도 공감할 수 있을 법한 기준들, 누적된 인사 평가 내역이나 승진 누락 연수 등에 점수를 매기며 기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게 되죠. 구성원 개개인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엑셀 시트 위의 일개 데이터처럼 대하려 하는 그의 나름의 몸부림에, 그들이 처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의 무게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노력하여 만든 인위적인 평정은, 본부장 등 윗선에서 "살리고 싶은 사람들"을 보전하기 위해, 근로자대표들과 협의한 기준으로 추렸던 희망퇴직/해고 대상자 리스트를 변경하도록 지시받게 되는 이후부터 차차 깨어져 가기 시작하는데요. 이 외에도 본인이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며 아우성치는 해고 대상자들을 직접 마주하고, 자신이 존경하는 상사, 함께 일 해와서 정들었던 선배, 심지어는 같은 인사팀 내 다른 동료 직원 등,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서로 공감하거나 믿지 못하는 상태로, 때때론 내부 총질이 벌어지기도 하는 현실을 마주하며 준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서 기원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점점 망가져만 갑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죽을 만큼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준희의 회사 생활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영화의 시선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병폐에 주목합니다. 특이할 점은 단순히 자본을, 사측을 절대악으로만 상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 덕에 노조, 그리고 실무진 임직원 사이의 위력 행사나 갈등과 같은 것 따위 역시 굉장히 사실적인 시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 아닐까 했습니다. 결국 한 회사의 이해관계 속에 얽혀 있는,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모든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서로 물어뜯고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결국 모두가 "다양한 형태로 패배하게 되는" 노동자들의 슬픈 현실을 사측에 가까운 인사팀의 눈높이에서 무기력하게 그려 내고 있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요. 결국 근로자들이 서로 싸우도록 때로는 방관, 때로는 조장하며, 책임 따위 없이 자본이 장막 뒤에 서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 또 이런 익숙한 관습과 제도에 익숙해져 있기에 스스로 톱니바퀴가 되어 문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우리의 모습, 그리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아직까지도 회사를 관둔 뒤의 안전망은 결여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