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6/10, 추천
과거 마왕 토벌에 성공한 용사 파티의 마법사였던, 천 년도 넘게 산 엘프 마법사 프리렌의 또 다른 모험 이야기. 엄청나게 긴 수명 덕에 다른 인물들보다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프리렌이, 새로운 인물들과 만나고 여행하며 과거의 추억을 곱씹고, 또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간다는 줄거리를 가진 애니메이션.
담담한 주인공의 잔잔한 여행기
일본에서 지금과 같은 이세계 판타지 장르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것이 벌써 20년가량이 되어가고 있죠. 분명 재미있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도 꽤 나왔습니다만,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요소를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설정이나 전개를 가져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져서 피로도 역시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고요. 이번에 가져온 '장송의 프리렌' 같은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전형적인 JRPG형의 중세 판타지(서구권의 중세 ~ 근대 전 시대상을 메인으로, 일본식 문화 및 세계관을 등장인물들에 장착시켜 두는 유형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듯)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도리어 요즘은 다시 찾기 힘든 담백한 배경으로 신선함을 주고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작은 만화가 따로 있고, 아직 완결이 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궤도로 보면 새 시즌이 나와도 역변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아 리뷰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쓰게 됐네요. 국내에선 애니플러스에서 들여와 방영했다고 하는데, 그냥 편하게 넷플릭스로 보셔도 됩니다.
타이틀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장송의 프리렌'은 천년도 넘게 산 마법사 프리렌의 시점을 중심으로,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돌아보는 일대기 같은 작품입니다. 이미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쩌다 보니 천재 대마법사 '플람메'의 손에 거두어져 수련했고, 세상을 어둠 속으로 몰아가던 마왕을 힘멜, 하이터, 아이젠과 함께 토벌하기도 했으며, 그 뒤로도 100년 넘게 더 살아오면서 계속해서 배워 왔으니 프리렌은 흔히 말하는 "먼치킨"과 같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마법은 "꽃밭을 만드는 마법"처럼 실용적이지도, 별달리 쓸데도 없는 사소한 마법들입니다. 평상시에는 무심하고 무감각, 무덤덤하지만, 이런 잡스러운 마법들을 수집할 때가 되면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캐릭터죠. 말씀드렸듯이 스토리가 프리렌의 일대기 그 자체이기에, 그녀의 이런 성격이 결과적으로는 작품의 분위기를 세팅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작중 프리렌은 하이터에게서 맡아달라고 부탁받은 제자 페른, 그리고 이후 합류한 아이젠의 제자 슈타르크와 함께 모험합니다. 이전 용사 파티원들을 하나씩 방문하면서 옛 기억들을 더듬어 보며 유랑하다가, 아이젠의 부탁을 받은 뒤론 죽은 자들이 간다는 "천국"이 있는 북쪽의 엔데로의 여정에 나서죠. 위기도 있고, 전투도 있지만 전체 분량을 따져보면 생각보다 싸움에 크게 포커스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뒤로 갈수록 더 강한 적들이 등장하면서, 비중이 높아질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기는 하지만요.) 오히려 현재의 페른, 슈타르크, 그리고 새로 만나는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해프닝, 그리고 이런 와중에 오버랩되는 스승 플람메, 용사 힘멜 및 파티원들과의 추억들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죠. 그래서 주인공이 누구와 싸워서 이겼네, 어떤 능력을 얻어서 더 강해졌네 하는 따위의 흔한 전개가 없는 게 특징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소중한 추억을 회상하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 그 소소함에 집중하고 있는, 잔잔한 매력을 가진 애니메가 아닌가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