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도 영상 13°C로, 햇빛이 날 때는 따뜻하게까지 느껴졌던 날씨가, 밤 사이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급격하게 영하권에 돌입했죠. 늦가을이 이어지는 듯했던 근래의 기온을 생각하고 옷차림을 했다면, 오늘 엄청나게 추우셨을 텐데요. 사실 많은 분들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이동 중에도 자차나 대중교통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주변에서도 종종 날씨가 추워져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감기나 독감 한 번쯤 걸리신 이후에나 생각을 바꾸시더라고요.
재작년과 올해, 두 번의 겨울 동안 보일러 고장을 겪으며 느낀 고충
굳이 아파서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따뜻할 것으로 기대하는 실내가 추워지는 순간, 갑자기 공포가 엄습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저희 집 보일러는 저번주 이미 한차례 망가져서 한 주를 통째로 힘겹게 보냈습니다. 보일러에 급수가 되는 부분이 망가져서 물이 들어가면 하부의 노즐을 통해 그대로 쏟아져버리더라고요. 월요일에 망가진 보일러를 화요일에 기사님이 와서 확인하셨고, 부품 교체가 필요하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증상을 들은 순간부터 예상했던 문제라고 하시더라고요.
문제는 해당 부품이 물량 부족으로 바로 고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토요일까지, 한 주 내내 수리되기까지 버텼습니다. 그동안 난방이나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상수도 자체를 끊어야 해서 아예 단수 상태로 살았습니다. 매일 나가야 하는데, 제대로 씻지도 못해 매회 9,000원씩 지불하며 목욕탕을 전전했고요. 밥을 해 먹기도 어렵고, 설거지도 할 수 없어 집에서는 배달 음식에 의존해야 했고, 꼭 물을 사용해야 한다면 생수에 의존했습니다. 그나마 미리 빨래를 해 놔서 망정이지, 정말 너무 끔찍했어요.
지금에 비하자면야, 다행히도 저번주는 그렇게 춥지는 않았죠. 그런데 저희 집은 재작년에도 보일러 고장을 겪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과는 달리 완전히 한겨울이었고요. 고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으로 판명 났지만, AS 대목 시즌이었기에 지체가 많이 되었고 그래서 며칠 동안 수도관이 동파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난방을 못 썼어요. 찬 물로 샤워를 하는데 진짜 체온 조절 잘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죠.
보일러가 망가지면 당신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저희 집 두 번의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보일러가 망가졌을 때의 생활 역체감은 정말 엄청납니다. 그만큼 우리의 가스보일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은가 싶은데요. 문제는 보일러가 망가져도, 전문 기사님을 모셔다 외판을 뜯어서 검사를 받고 수리를 하지 않는 이상 전문 지식이 없는 거주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죠.
인터넷 기사나, 보일러 회사 홈페이지 등을 살피면 정기 점검을 받으라느니, 자가 점검을 해 보라느니 이야기가 많은데요. 현실과는 꽤 동떨어진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어렵네요. 우선 보일러를 열어 봐도, 일반인은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2회의 보일러 수리를 바로 뒤에서 목격하면서 제가 느꼈던 것은, 내부에서 잘못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찌그러지거나 파손됐다거나, 어딘가 붙어 있어야 할 것들이 떨어져 나갔다거나, 물리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괜히 배기관 같은 곳이 막히진 않았나, 외부와 잘 밀봉되어 있나 확인해 보고 흔들어 보다가 잘못 건드려서 발생하는 사태를 전문성 없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어요. 말 그대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괜히 체크해 보겠다고 설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러니 자가 점검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기 점검은? 혹시 휴대폰 쓰실 때, 아무 이상이 없는데 6개월마다 점검받으러 가시는 분 계신가요? 보일러가 이상 동작하는 일이 없는데, 기사를 부른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아마 대리점에 전화하면 짜증부터 낼 것 같은데요. 특히나 가을 넘어가며 슬슬 바빠지는 시즌에 그러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 가정 1 보일러가 사실상 기본일 만큼 보급률이 높은 나라에서, 정기 점검이 중요했으면 보일러 제조사에서 자발적으로 체크하러 오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셨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생명과 안전에 연관된 문제이니만큼요. 가스 회사에서는 실제로 매년 여러 번을 약식으로나마 점검 나오시기도 하시죠. 돈 내고 설치한 보일러를 정기 점검받겠다고 추가로 돈을 지불하는 것도 불쾌합니다. 정수기를 그렇게 팔았으면 이미 다 망했죠. 거기다 점검받았다고 망가질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이러니 정기 점검도 옵션이 되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망가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부터 착실히 잘하자.
요약하자면 ①보일러가 망가질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과, ②보일러가 망가진 이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두 가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으면, 정말 겨울에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불편해서 죽을 것 같고, 한겨울엔 저체온증 때문에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망가지는 보일러 자체에 대한 대책보다는, 보일러는 언제든 망가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대비책을 마련해 두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1. 정수기가 있어도 비상용 생수를 구비해 놓읍시다.
보일러가 상·하수도와 별다른 관계가 없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각 주택의 구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저처럼 상수도 배관과 연관된 보일러 부품이 망가질 경우, 집에서 물을 아예 쓸 수 없게 되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부품이 없거나, 기사님들 일정이 바쁠 때면 수리가 하염없이 밀리는 상황이 겹치면, 정말 말 그대로 한 주 내내 단수 상태로 지내야 합니다. 평상시에 직수형, 저수조형 등의 정수기를 쓰거나, 수돗물을 티백과 함께 끓여 드시는 집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당장 마실 물조차 없게 될 수도 있어요. 때문에 가구당 최소 2L 생수를 한 묶음(6병)에서 두 묶음 정도는 확보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한두 병 정도는 있어봐야 정말 금방 써 버려서 없어지거든요.
2. 겨울 옷과 이불은 미리미리 준비해 놓읍시다.
저는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겨울에도 집에서 난방을 돌리면 반팔, 반바지를 자주 입고 지내는 편이에요. 그래서 겨울이 되어도 가을 옷에 외투만 조금 더 두껍게 걸치는 정도로 생활하고, 두툼한 옷을 천천히 준비하는 편인데요. 보일러가 여러 번 망가지는 것을 경험한 이후로, 겨울 옷을 조금 더 빨리 꺼내 놓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따뜻한 옷만 잘 갖춰 입고 있어도, 실내에서는 생활할 때 추위가 반감되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어요. 수족냉증이 있으실 경우, 저렴한 수단이면서도 굉장히 따뜻한 수면바지나 양말을 미리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고요. 마찬가지로 겨울 이불도 미리 꺼내서 쓸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습니다. 당장 빨래를 못 하는 상황인데, 보관해 뒀던 겨울 이불에서 꿉꿉한 냄새라도 나면 정말 난처하니까요.
3. 보일러에 의존하지 않는 난방 수단도 확보합시다.
재작년 보일러 고장을 겪은 이후, 작년 초에 할인 중인 석영관 전기 히터를 하나 사 뒀습니다. 난방을 돌릴 정도로 춥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한기가 느껴지는 날 종종 이용하기 좋았는데요. 무엇보다 이번에 보일러가 망가졌을 때 정말 잘 써먹었습니다. 집에 한 대 정도 있다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굉장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사실 난방 효율이 좋진 않고, 오래 사용할 경우 전기세가 많이 나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국내 안전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셔야 하고요.
마찬가지로 겨우내 최고 아이템인 전기요와 전기장판도 이런 상황에선 큰 도움이 됩니다. 석영관 난로와 달리, 이쪽은 에너지 소비 효율이 상대적으로 좋은 축에 속하기도 하죠. 실제로 한 번 가동시키면 이 방 저 방 가리지 않고 도는 보일러로 나가는 가스비보다, 두 제품을 사용해 쓰는 전기세로 절약 가능한 돈이 상당합니다. 특히 전기요는 거의 필수 아닐까 하는데요. 아직 갖고 계시지 않는다면, 이참에 하나 마련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4. 이외에도 난방 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들을 찾아봅시다.
한겨울에는 보일러를 틀어도 방 안이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거나, 금방 식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요. 특히 창밖 단열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공기층을 잘 잡아주는 신식 모델의 새시의 경우엔 비교적 덜한 편인데, 아무래도 옛날에 시공된 창문은 틈새로 냉기가 아주 선명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난방을 할 때도 이런데, 보일러가 끊겼을 때는 어디에서 찬바람이라도 틈새로 들어오면 아주 죽을 맛입니다. 이럴 때 DIY 단열재를 사용하면 생각보다 꽤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요. 요즘은 오픈 마켓 등으로 판매처도 많아서, 적절한 가격대의 제품을 골라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만 구매 전에 꼭 리뷰를 잘 읽어보는 것이 중요해요. 단열 효과 자체가 낮은 경우도 있고, 창틀 길이와 넓이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사이즈인 경우도 있어, 사놓고도 제대로 쓸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추위에 약하신 분들이 자주 찾으시는 핫팩도 보일러가 망가졌을 때는 꽤 유용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형도 제각각이고, 붙이는 핫팩도 있어서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요. 핫팩 역시 오프라인으로 소량 구매하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박스 단위로 벌크 구매하는 것이 훨씬 저렴합니다. 겨울철 핫팩 사용량이 많은 가정이라면, 할인할 때 추위 대비로 미리 쟁여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