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된 부모의 원죄,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삶
한국어로 된 웹만 돌아다녀도, 2차 대전 추축국이었던 나치 독일에 관한 후문을 쉽게 찾을 수 있죠. 민간인 학살 등의 일반적인 전쟁 범죄뿐만 아니라(물론 강압적 지배와 전쟁은 그 자체로 큰 범죄이므로 "일반적"이라고 하여 경중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요.) 일제 731부대의 '마루타' 인체 실험처럼, 나치의 엽기적인 만행으로 종종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레벤스보른(Lebensborn)'입니다.
'생명의 샘'이라는 의미의 레벤스보른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시행된 우생학 프로젝트 기관이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혈통의 우열을 계량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나치 당국은 게르만족, 그중에서도 푸른 눈과 하얀 피부, 장대한 골격과 금발 머리를 가진 유럽의 순수한 아리아인이 유전적으로 인류의 정점에 있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친위대인 슈츠슈타펠(Schutzstaffel)의 청년들에게 서로 결혼하여 후세를 가지도록 장려했는데요.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들은 본격적으로 유럽 각지의 아리아인의 외관을 한 청년들을 회유, 압박하거나 강제하여 독일인, 특히 나치 군인과 아이를 가지게 하고, 그중 외관적으로 이상적인 아이들만을 모아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하려 했죠.
이렇듯 광기의 산물이었던 레벤스보른은 다른 많은 전쟁 범죄들처럼 나치 독일이 패배하여 무조건 항복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는 레벤스보른에 대해 배우면서 보통 여기까지, 그저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러나 문제는 레벤스보른에 연관된 이들의 전쟁 이후 삶이었는데요. 어떤 이유로든 간에 프로젝트에 합류했던 여성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비난과 참혹한 법적/물리적 폭력이 가해졌으며, 때문에 이들은 생존을 위해 강제로 이주해야 했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의 대부분을 나치의 일원이었다는 꼬리표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 옛날,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귀환했던 조선 '환향녀'들의 슬픈 삶이 오버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레벤스보른이 해체되면서 아이들은 사실상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어버립니다. 일부는 부모나 조부모에게 돌아가기도 하지만 잠시뿐, 사회의 시선이나 경제적 어려움, 각국의 정책 등 모종의 이유로 이들은 보육 시설에 맡겨지거나 유럽 각지로 입양 보내지게 되죠. 이후의 삶 또한 결코 순탄치 못했습니다. 존재 자체가 나치의 잔재였던 아이들은, 지은 죄가 없음에도 전쟁의 과오를 평생토록 대신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죠. 전쟁 직후 반 나치 정서가 극에 달했던 유럽 피점령지들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들이 겪은 수모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통한의 인생이었을 겁니다.
레벤스보른 아이들의 전후 삶을 그린 게임,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그리고 이 가엾은 아이들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2018년, 연합국 전승기념일(5월 8일)에 출시된 것이 바로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My Child Lebensborn)입니다. 실제 레벤스보른 출생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모은 이들의 삶을 게임에 그대로 반영하여 가슴 아픈 역사를 눈물겹도록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게임인데요. 모바일, PC, 콘솔 환경에서 각각 이용 가능하며, 한국어 역시 제공 중입니다. 해당 게임에 한국어 오역이 많아, 자원봉사 번역가로 원격 LQA/재번역을 진행했던지라 제게는 의미가 컸던 작품이기도 하네요. (물론 원어가 아니라 영어에서 이중 번역으로 작업한 데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제 작업에도 놓친 부분, 잘못된 부분이 꽤 됩니다.)
타이틀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게임은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입양한 레벤스보른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그린 게임입니다. 게임 경험 자체는 기존의 육성 시뮬레이션과 매우 흡사한데요. 플레이어는 부모로서 관찰자이자 조정자로, 직접 면전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행동의 선택을 통해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후견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종전 후 3년, 주인공은 독일인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 레벤스보른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데요.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를 집에서 양육하면서 가족의 정을 쌓게 되고, 또다시 3년이 흘러서 돌아온 아이의 생일 전날, 플레이어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죠.
아이를 키우는 육성 시뮬레이션이지만, 사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장르의 구분을 떠나 육성보다는 양육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게임입니다. 결국 성장으로 점철되는 다른 게임들과는 달리, 아이가 먹고 자고 놀고 공부하는 하루하루의 일과와 학교 및 사회에서 겪게 되는 각종 경험들, 그리고 이를 통한 아이의 인격 형성 과정 묘사가 중점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나치"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린,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겪는 차별과 폭력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위로해야 하는 부모의 시점이기 때문에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몰입도가 매우 높기도 하고요.
처음 시작하면 게임의 배경을 설명해 주는 컷신이 진행되며, 이후 입양할 아이를 선택하게 됩니다. 저는 처음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키가 더 작고 어려 보여서 가엾다고 느꼈기 때문에 남자아이인 클라우스를 데려왔던 기억이 나네요. 주인공은 다행히 몇 년간 아이와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되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은 클라우스의 생일 전날이자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기 며칠 전입니다.
처음 게임 화면이자 거실에서 아이와 대화하는 장면인데요. 상단 좌측 박스에서 가장 큰 원은 현재 시점으로, 예시의 스크린샷 상태는 저녁 시간대를 뜻합니다. 그 옆의 작은 원들은 각각 한 번의 행동을 할 때마다 소모하게 되는 시간 단위(time units)이고요. 하루는 총 아침/점심/저녁/야간의 네 파트로 나뉘는데, 한 번의 기회만이 주어지는 야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대에는 두 번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세수를 시키거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등의 간단한 활동을 제외하면 한 번의 행동마다 하나씩 소비하기 때문에 할 일의 우선순위를 잘 매기는 것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운영 요소입니다.
역시 네모 안의 시간 아이콘 옆의 수치는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이며, 음식이나 장난감 등을 구매할 때 쓰이는데요. 추후 주인공이 출근하여 돈을 벌어오게 되는데, 버는 돈에 비해 물건들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정 이상 돈을 모을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자금을 계산적으로 사용하는 지혜 역시 필요하고요. (크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주말이 되거나 방과 후 아이가 원할 때는 교외로 나가서 놀 수 있는데, 지출에서 식비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돈을 쓰지 않고도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됩니다.
욕실에서 클라우스에게 세수를 시키는 모습입니다. 세수는 시간 소비가 없지만 씻길 수 있는 정도가 제한적인 만큼 필연적으로 날을 잡아(?) 아이에게 목욕을 시켜야 합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처럼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행동은 여러 개가 있죠. 하단의 버튼은 집안의 각 장소를 뜻하며, 일부 활동을 제외하면 유추할 수 있듯이 각 방마다 할 수 있는 행동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례로 서재에서는 받은 우편을 읽거나 편지를 쓸 수 있으며, 주인공이 쓴 일기를 읽으면서 좀 더 세세한 게임 스토리의 배경을 알아갈 수 있죠.
또한 주방에서는 요리, 식사와 수공예를, 욕실에서는 아이를 씻기는 것이 가능하고, 침실에서는 그림을 그리며 놀아주고 옷을 갈아입히거나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으며, 거실에서는 우편을 받거나 지역사회 통보문을 확인할 수 있고, 역시 아이와 놀아줄 수 있으며 집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식이죠.
이 중 원형의 주방, 욕실, 침실 아이콘에는 각각 아이의 허기, 청결도, 안정감 지수가 표시됩니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는 이 수치들을 항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주어야 하는데요. 기본적으로는 관리가 쉬운 편이지만, 난이도가 올라가는 후반부 챕터들에서는 관리에 나름 주의가 요구됩니다.
아이와 교류할 때는 위와 같이 자신의 언행을 골라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이의 심경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고심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시와 같이 화면에서 선택 가능한 대답은 각각 "그냥 즐기는 것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아주 즐거울 거야, 약속할게.", "어쨌든 간에 이제 잘 시간이다, 클라우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세 답안의 성향이 제각각이죠. 아이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에 따라 나를 더, 혹은 덜 신뢰하거나 마음의 문을 열고 닫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긍정적이고 관대한 부모가 되면 아이는 집에서는 더 행복하겠지만 바깥에서 곤경을 겪을 때 더욱 힘들어할 것이고, 반대로 아이를 엄격하게 대하면 행복도는 떨어지겠지만 수모를 겪어도 덜 힘들어하게 되겠죠. 이렇듯 현실에서 아이가 부모를 통해 느끼고 배우는 것처럼 내 언행에 따라 아이의 성격이 점점 변해가기 때문에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누적된 행동 방향성을 각 챕터의 마지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아이에게 내가 대체로 어떤 부모였는지 확인할 수 있죠. 또한 하단에서는 "당신과 xx%의 다른 사람들"이 챕터 스토리의 중요한 기로마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려주기에, 다른 게이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볼 수 있게 해 둔 점은 흥미롭기도 합니다. 마치 레벤스보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커뮤니티라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그리고 당시에 정말로 그런 것이 있었다면, 이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따라옵니다.
역경 앞에서 당당히 노래하는, 희망의 찬가와 같은 게임
위에서 직접적으로 소개한 요소들 외에도 게임 내에는 해야 할, 혹은 할 수 있는 일들 더 있는데요. 게임 플레이 자체가 직관적이고 튜토리얼이 아주 친절하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하는 것은 딱히 외부 공략이 없이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모의 마음으로 직접 고심하고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정말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들을 핍박하는 다수는 "나치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폭력성을 보이죠. 그저 어린 날의 장난이라고 보기엔 학교 일진들의 행위는 지나치게 잔혹하며, 이를 방관, 때로는 동조하기까지 하며 혐오를 조장하는 어른들의 모습 또한 가히 충격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슬픈 점은 주인공인 내가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홀부모로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아이가 이러한 부조리까지 겪게 되지만, 집에서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가상의 게임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무기력함과 좌절감만을 느끼게 되는 게임은 아닙니다. 사회의 편견에 맞서 아이의 편에 서주는 이들 역시 소수나마 존재하며, 고난을 이겨내고 성장해 가는 아이를 보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엿볼 수 있는데요. 비록 불공평한 차별 앞에서 사회에 대한 아이의 마음은 점점 굳어가지만, 부모인 주인공과의 신뢰를 통해 아이는 또다시 내일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한참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두 번, 세 번씩 엔딩을 보고서도 계속 다시 시도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물론 스토리의 기둥이 되는 큰 이벤트들은 회차를 거듭해도 변함이 없지만,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더 나은 선지를 찾고자 계속 도전하게 만드는, 스토리와 교훈 못지않게 플레이 경험 또한 굉장히 완성도가 높은 게임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네요. 전체 플레이 시간 또한 4~5시간가량으로 적지 않은 수준인 만큼 볼륨 또한 탄탄하고, 동화풍으로 특유의 감성이 있는 아트와 마음속 깊숙이 박히는 배경음 역시 몰입에 큰 영향을 줍니다.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은 유럽의 슬픈 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우리가 직접 체험해볼 수 있게 하는 뜻깊은 게임으로, 우리와 밀접한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국인으로서는 필리핀의 코피노(Kopino), 레벤스보른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비극인 베트남의 라이다이한(Lai Đại Hàn) 등의 유사한 문제를 언급할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학교폭력과 왕따, 소수자, 약자에 대한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멸시와 차별 등과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각종 문제 역시 연상케 하는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게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이유 없는 혐오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화와 소통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