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평 요약 : 7/10, 추천!
유모 글로리아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클레오의 여섯 살 꼬맹이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 글로리아의 가족들이 있는 고향 카보 베르데(Cabo Verde)에서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중 겪는 일들을 아이의 시각으로 담아낸 역동성이 특징.
시사회로 먼저 보고 온 '클레오의 세계'
오는 2024년 1월 3일 개봉 예정인 영화 '클레오의 세계'를 며칠 먼저 보고 왔습니다. 사실 영화관으로 직접 보러 가기 전까지는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몰랐기에, 자체적으로 블라인드 시사회를 한 셈이 되었습니다. 티켓 부스에서 함께 나눠 주시는 작은 포스터 전단지를 보고 나서야, '아, 이 영화 "몽글몽글"한 느낌이겠구나' 하고 깨닫게 됐네요.
클레오의 세계는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공감하며 편하게 보기 좋은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 주인공 클레오를 그대로 따라가는 시선 처리의 카메라가 특징이고, 때문에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관찰 일기와 같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알이 두꺼운 안경을 써야 할 정도로 눈이 나쁜 클레오의 시력을 방증이라도 하는 듯, 카메라는 종종 초점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또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들을 조명하기도 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극 중 커튼과 같은 요소로 중간중간 활용되는 수채화풍 애니메이션 역시 굉장히 흐릿(blur)하고 추상적으로, 실사의 카메라와 동일 선상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만들어 갑니다.
카보 베르데에서 온 유모, 파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
파리에서 아빠와 함께 살고 있는 꼬마 클레오. 엄마는 갓난아기일 적에 여의었고, 아빠는 업무로 부단히 바쁜 삶을 살고 있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대신 클레오에게는 혈육을 대신해 자신을 돌봐주어 온 유모 글로리아가 있는데요. 부모의 공백을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었던 글로리아였기에, 클레오는 사실상 그녀를 엄마와 같이 생각합니다. 자라다 보면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 "엄마 껌딱지"로 불리는 아이들이 있죠. 아침에 글로리아가 깨워 주면 일어나서, 그녀가 차려 주는 아침밥을 먹고 어린이집에 갔다가, 하원 후 글로리아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저녁을 먹고 목욕도 하고 나서 잠들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글로리아와 함께 하니 클레오는 자연스레 '글로리아 껌딱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글로리아 역시 클레오를 "내 딸과 같은 아이"로 생각하며 돌보죠. 그래서 두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현대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서로 다른 이들을 통해 전하는 따뜻한 가족애
영화 줄거리는 어머니의 부고로 파리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글로리아를 만나기 위해, 방학을 맞아 비행기를 타고 카보 베르데로 여행을 떠난 클레오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다운 날것의 풍부한 감정의 전달이 인상 깊은데요. 글로리아와 재회하여 느끼는 환희와 사랑, 모든 것이 낯선 섬의 모습이 불러일으키는 궁금함, 이질감과 역동성, 파리에서 지낼 때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글로리아의 가족들을 만남으로써 느끼는 기쁨과 슬픔, 분노, 질투, 동질감 등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한 시간 남짓 되는 중 ~ 후반부 내내 소용돌이치면서 보는 이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성인 관객들이라면 모두들 겪어 보았겠지만, 대부분은 잊고 살았을 어린 시절의 수많은 감정들에 공감하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스크린 속 클레오를 바라보게 됩니다.
또 다른 행복을 위해 마주하는 이별
클레오의 희망과는 달리, 결국 글로리아는 파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런 사실은 계속 전제된 채로 그려지기 때문에, 관객은 두 인물이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글로리아를 탓할 수도 없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고향 집에는 친자식들의 후견인이 되어 줄 사람도 남지 않았고, 아들 세자르는 어린 나이부터 글로리아에게 방임 됐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클레오 못지않게 엄마가 필요한 상황인 데다, 큰딸인 난다(Fernanda)의 출산으로 집안에 돌봐야 할 아기가 생겨 아예 할머니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벌어 왔던 돈으로 짓고 있는 호텔 건물의 진척 역시 만족스럽지 않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이고요.
클레오 역시 머리로는 이런 사실들을 다 알고 있지만, 마음은 쉽게 따라 주지 않습니다. 막연히 아기가 죽고 나면 글로리아가 자유로워져서 함께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도 하게 되고, 파리에서와 달리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주지 않는 글로리아가 야속하기만 하죠. 영상 통화를 하며 글로리아를 대체할 다른 유모를 구했다고 좋아하는 아버지 역시 클레오의 마음에 기름을 붓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결국은 글로리아를, 그녀의 가족들을 이해하게 되고, 파리의 집에서 글로리아와 가족이 되었던 것처럼 이들과도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고요. 글로리아를 사랑하지만, 진정 그녀를 위한다면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불과 십여 분 전에 보여준 화면 속 어린이는 어디 갔나 싶을 정도로 떠나는 날 클레오의 모습은 어른스러워 보이죠. 반면 진중한 어투로 사랑의 작별 인사를 고했던 글로리아는, 클레오가 시야 밖으로 사라진 뒤 주체하지 못하는 울음 속에서 대조적인 모습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별을 마주하는 아이와 어른, 두 명의 마음에 자연스레 이입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결말로 매듭 짓는 영화가 아니었나 해요.
P.S.
클레오의 세계에는 쿠키가 없습니다. 크레딧이 짧아 나갈 준비를 하다 보면 끝나 있어요.